오피니언 사설

국정원장이 선심 쓴 돈 출처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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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만복 국정원장의 ‘엉성한 스파이’ 언행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이번에는 그가 국가 예산을 사용(私用)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정보위 한나라당 의원의 문건에 따르면 김 원장은 1월부터 5월 사이에 고향인 부산 기장군의 각종 행사에 기부하거나 식사를 제공했다. 10개의 행사에 축하화환을 보냈고, 자신이 회장인 동창회의 체육대회에 ‘김만복 타월 1000장’을 기부했다. 동창회 모임 때는 임원 등 수십 명과 식사를 했고, 지역의 국정원 간부, 공직자, 경찰서장 등과 식사모임을 가졌다는 내용도 있다.

국정원장은 세계와 북한, 국내 급진 좌파·친북 세력, 국내외 산업스파이를 상대로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지키는 데 24시간도 모자라는 자리다. 불철주야 음지에서 그런 일을 하는 직원들을 지휘하고 그들의 표상이 되어야 하는 자리다. 그런 공직자가 한가하게 고향과 관련된 단체·행사에 관여하고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을 비판한 보도에 대해 “언론에 경기(驚氣)가 든다”고 했다. 체육대회에 참석한 동창들과 그 가족들의 손에 쥐어 있었을 ‘국정원장 제공’ 수건을 상상하면 국민이 경기가 든다. 우리는 국정원에 수건에 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국정원 공보관은 “사실 여부를 모르겠다”고만 했다.

김 원장은 고향 행차나 기부 행위, 식사 제공을 누구 돈으로 했는가. 그는 업무추진비라는 국가 예산을 사용한 것은 아닌가. 감사원은 사실 확인을 위해 감사를 해야 한다. 국정원 예산은 항목별로 국회 정보위의 심사를 받도록 되어 있다. 정보위는 그가 업무추진비를 사용(私用)하지 않았는지 조사해야 한다.

국정원을 방문한 고향 사람들은 실탄사격도 해봤다고 한다. 국정원 사격장이 관광용인가. 이 또한 예산의 사용(私用)이 아닐 수 없다. 공(公)과 사(私)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국정원장의 행태가 이 나라 공직자들의 모습이라면 참으로 한심하다. 그는 무엇을 위해 봉직하는 것인가. 감사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