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진세근의 중국 부자 이야기 15] 성실 하나로 성공 일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쑨더량이 양복에 넥타이를 맨 모습은 인터뷰 때나 볼 수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포브스코리아30대에 3,000억원대 부를 이룬 사나이, 다 떨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회장, 그가 바로 성공을 거머쥔 중국 인터넷 포털 1세대 주자인 쑨더량(35) 저장왕성과학기술유한공사 회장이다. 그를 표현한 더 정확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실’이다.


전 재산의 80%를 행운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독특한 중국 기업인이 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분석 방정식을 ‘성공=행운 80%+지혜 10%+땀 10%’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해보자. 그의 주장은 허구다. 스스로의 분석일 뿐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지독한 성실함으로 부(富)를 일군 사람이다. 행운이 있었다면 그의 성실함에 대한 하늘의 소략한 선물일 뿐이다.

그는 생활 모습부터 독특하다. 수천억 원 규모의 자산가인데도 낡은 티셔츠에 다 떨어진 청바지를 입고 택시로 출근한다. 양복에 넥타이를 맬 때는 외부 행사나 언론과의 인터뷰가 있을 때뿐이다. 인터뷰를 할 때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말을 한다. 항상 수줍은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그가 바로 쑨더량(孫德良) 저장(浙江) 왕성(網盛) 과학기술유한공사 회장이다. 그는 중국 포털의 제1세대 주자다. 온갖 어려움을 겪어 왔기 때문일까. 쑨더량은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노숙한 기업가의 이미지를 풍긴다.

그의 창업 자금은 2만 위안(약 240만원)이다. 아버지가 이곳저곳에서 빌린 돈이다. 현재 쑨 회장은 회사 주식의 62%인 3,735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주당 81.41위안이니까 그의 재산은 30억4,000만 위안(약 3,650억원)이나 된다. 철저하게 무차입 경영을 한 덕분에 은행 부채는 전혀 없다.

왕성이 얼마나 뛰어난 평가를 받는지 한 번 살펴보자. 왕성의 현재 주가는 81.41위안이지만 지난해 주당순이익(당기순이익을 발행 주식 총수로 나눈 값)은 0.47위안이다. 무려 173배의 평가 차익이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시나닷컴은 현재 미국에서 주당 45.3달러로 지난해 주당 이익(0.69달러)으로 계산해 보면 65.6배다.

중국 최고의 검색엔진으로 평가받는 바이두(百度)도 160배 정도다. 왕성이 얼마나 풍부한 미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왕성은 현재 중국화공망·중국의약망·중국복장망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포털 사이트를 열고 있다.

1972년 그가 태어난 저장성 항저우(杭州) 샤오산(蕭山)은 빼어난 풍광 외엔 보잘것없는 궁벽한 산촌 마을이었다. 부모의 소원은 자식이 도회지로 나가 생활하는 것뿐이었다. 쑨더량은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도회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부였기 때문이다.

그는 항저우 고급 중학에 합격했다. 주변 산골 마을에서 항저우로 진출한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항저우에서 다시 이를 악물고 공부해 명문 선양(瀋陽) 공업대에 갈 수 있었다. 전공은 컴퓨터 공학을 택했다.

중국에서는 90년대 초 대학생을 ‘하늘이 점지해준 아이(天之驕子)’라고 불렀다. 그만큼 그 시절엔 대학 가기가 어려웠다. 일단 대학생이 되면 출세는 보장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도 쑨 회장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주변 학생들에 비해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뭔가 특기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탁월한 영어 실력 덕에 선배가 좋은 회사로 뽑혀가는 것을 봤다. 이때부터 옥스포드 영어사전은 내 신체의 일부가 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는 정말 옥스포드 사전을 끼고 살았다. 점차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영어 덕분에 그는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부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쑨 회장은 이를 ‘행운’이라고 부른다.

기회는 봄바람처럼 소리 없이 다가왔다. 95년 대학을 졸업한 직후 쑨 회장은 항저우로 돌아가 직업을 찾았다. 마침 항저우 유일의 포털 업체가 직원을 모집했다. 그는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컴퓨터 공학 전공자와 포털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면접관은 질문 몇 마디만 던지더니 나를 외면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곧이어 이 회사는 웹사이트에 올릴 중국어 문장을 영문으로 번역할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냈다. 그는 이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의 영어 실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포털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 회사는 2년 만에 망했다. 쑨 회장은 다른 포털 업체를 찾아 나섰다. 포털이 자기 적성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저우에는 다른 포털 업체가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그는 무릎을 쳤다. “그래 맞아, 없으면 내가 하나 만들면 되지!”

그는 애초 의류 판매용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했다. 97년 10월 이를 위해 항저우 최대의 도매 의류시장인 우린(武林) 광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열리는 의류 박람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두 번째 행운이 찾아온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박람회가 무산된 것. 그는 그 주변의 옛 친구가 운영하는 화공약품 공장에 가서 비를 피했다. 이때 그는 우연히 친구의 서랍 속에서 수많은 화학공장의 명함을 발견했다.

“돌연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왔다”고 쑨 회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바로 화공업품 전자상거래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운이 좋았다. 항저우에서 허름한 방을 하나 빌려 웹사이트를 꾸몄는데 당시 화공품의 가격 변동이 심해 전자상거래 대상으로는 적격이었다. 사업은 불길처럼 일어났다”고 그는 전했다.

“신뢰와 만족, 감동을 주는 사이트 만들터”

당시 쑨 회장은 처음으로 회원제를 도입했다. 요컨대 수익모델로 ‘회원제+광고’의 이중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 전략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서라도 화공품 거래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사업은 순조로웠지만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었다.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떨었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낮엔고객을 찾아다니고 밤엔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하루를 100시간쯤 쪼개 살았던 것 같다.”

사업을 시작한 지 첫 달에 회비로 2,000위안을 벌었다. 97년 말에는 회비로만 수십만 위안이 쌓였다. 99년 왕성은 마침내 수익 500만 위안 고지를 돌파했다.

쑨 회장은 이번엔 의약품에 주목했다. 중국 의약품의 종류가 많고 가격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떤 약은 동일한 약인데도 제약회사나 브랜드에 따라 가격 차이가 200배나 나기도 했다. 그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연 것이 중국의약 망(網)이다.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의약품도 화공품 사이트 못지않게 큰 성공을 이룬 것이다. 그 기세로 왕성은 2006년 10월 31일 중국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이제 쑨 회장의 다음 목표는 웹상에 백화점을 하나 여는 것이다. 제목도 ‘고객+연맹’으로 잡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구입할 수 있는 구매 사이트를 꾸미는 것이 그의 목표다.

“단순히 시장에 가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주는 구매 사이트는 필요 없다. 신뢰와 만족, 무엇보다 감동을 주는 사이트, 이게 바로 우리가 앞으로 구축해야 할 구매 사이트의 모습이다.”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표정이었다.

<포브스 55호>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J-Hot] [경제비사:최원석] 극적 낙찰 후 런던 고급 술집 통째로 전세

[J-Hot] 한명숙 TV토론 출연해 "대리모 적극 추진" 실언

[J-Hot] 이명박 54.1%>손학규 16.6%>조순형 10.3%

[J-Hot] "국정원장 답변, 놀라 까무러칠 정도"

[J-Hot] "수십년내 나라 전체 바다 잠겨" 전세계에 SOS

[J-Hot] 애인대행 사이트 '비건만남' 뭔가 했더니 변종 성매매

[J-Hot] "일본 사람이란 말에 '엉엉'" 사오리 "한국 택했는데…"

[J-Hot] 최희섭 "미국선 상상할수도 없는 한국응원문화에 충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