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에서 벗어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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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승려와 형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30여명분 고기와 소주를 먹고 40여만원의 회식비를 총무원쪽에서 냈다는 한 식당의 메모지가 나왔다. 오늘의 불교 종단이 그동안 무슨 짓을 했고,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단서라고 본다. 종단을 권력과 금력으로 끌어온 작은 본보기라고 볼 수도 있다.
개혁파 진입을 막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하고,이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형사들에게 회식을 제공하고,이런데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본사 주지 임면권을 장악해야 하고,이를 위해 총무원장 권한이 강화돼야 하며,이를 위해 종회제를 만들었던 것이다. 종단 장악을 위한 권력과 금력의 먹이사슬이 곧 오늘의 불교 종단을 어지럽힌 요인이다. 때문에 이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없이 불교개혁이란 불가능하다.
이제 서의현 총무원장이 사퇴를 표명했고,개혁회의가 새 집행부를 구성함에 따라 불교종단 개혁의 첫발을 떼어놓는 시점에 이르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 권력과 금력의 연결고리를 끊는게 조계종단이 해야 할 근본적인 개혁의 출발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종권의 구조개편이 선행돼야 한다. 총무원장에 편중된 인사·재정권을 분산해서 본산중심의 지방자치제를 운영하는 근본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 총무원장이 24개 본사에 대한 주지 임면권을 가짐에 따라 비리와 부정이 싹트고,잿밥에 대한 관심만 높아졌던데 대한 반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총무원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본산중심의 자치제 운영이 바람직하다.
둘째,종회제를 해체하고 원로회의같은 새로운 형식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의 종회제란 권위주의시절의 유정회같은 것이어서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종단의 원로적 기관이 아니라 이번 연임 과정에서 나타났듯 원장의 들러리 역할을 하는 기능밖에 없었다. 총무원장의 독단과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제어기능을 다하려면 원로회의를 강화하는게 바른 개혁이라고 본다.
장기적 의미의 불교개혁이 있기 위해서는 역시 수행과 포교기능이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수행과 포교라는 승려 본래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불교개혁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판승(수행승)과 사판승(교화승)간의 승적분류를 엄격히 해서 순환근무제를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수행과 포교를 균형있게 실시함으로써 승려들의 자질향상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다.
결국 불교가 개혁을 하자는 목표는 다른데 있는게 아니다. 제세구도의 길을 현실속에서 찾고 실천하는데 있다. 불교계가 내걸고 있는 포교·승려교육·역경이라는 3대 사업에 정진하기 위해서도 조계종단은 빠른 시일안에 난국을 수습하고 법과 절차에 따른 단계적 개혁을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불교개혁의 시작과 끝은 권력·금력과의 단절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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