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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중 "투르크멘에 가스관 꽂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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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연안 국가 투르크메니스탄이 세계 열강의 에너지 각축장으로 떠올랐다고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이 4일 보도했다.

미국.러시아.중국과 유럽이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셰브론.BP.로열더치셸 등 메이저 정유회사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경영진을 보냈다고 AWSJ는 전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 4위의 가스 대국이다. 확인 매장량이 2조8000억㎥, 추정 매장량은 15조㎥에 이른다. 확인 매장량만 따져도 한국의 160년치 도시가스 공급량(2005년 기준 173억㎥)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가스 위에 떠 있는 나라'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나라는 지난해 말 21년간 철권 통치했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전 대통령이 급사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천연가스 이권의 향방을 결정할 차기 정권을 누가 차지하고 어떤 정책을 펼지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새 정권이 개혁.개방 정책을 펴겠다고 하자 가스에 눈독 들이는 강대국 외교관과 다국적 에너지사 최고 간부들이 줄지어 투르크메니스탄을 찾고 있다.

1997년부터 투르크메니스탄 유전 개발을 맡아온 뷰런 에너지사의 관계자는 "지금 이곳에선 엄청난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며 "19세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을 연상케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금까지 경쟁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선두 다툼을 하고 있다. 올해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3국을 잇는 가스관 건설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기존 공급량의 두 배에 이르는 한 해 900억㎥의 천연가스가 러시아에 공급된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싼값에 산 가스를 유럽에 되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중국도 양국 간 가스관 건설에 합의하고 매년 300억㎥를 공급받기로 했다. 또 투르크메니스탄의 구노르타욜로탄 가스전 채굴권을 따내고 7월 계약에 서명했다. 매장량이 최대 7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대 가스전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카스피해를 가로지르는 가스관 건설을 추진 중이다. 미 정부 관계자는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해 카스피해를 횡단하고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가스관 건설을 제안했다.

미국은 지난달 타당성 조사 명목으로 아제르바이잔에 170만 달러(약 15억원)를 지원했다. EU가 직접 수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툭하면 가격을 올리고 가스를 끊겠다고 위협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 공급 능력에 회의적인 전문가도 있다. 과연 투르크메니스탄이 여러 국가를 만족시킬 만큼 가스를 생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아시아 담당자는 "투르크메니스탄이 2016년까지 수출하기로 계약한 1300억㎥의 가스를 생산하려면 25년간 매년 50억 달러(약 4조6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우선 할 일은 이 돈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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