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정치의 그늘, 엽관제·연고주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호 08면

미국은 어쩌면 양성화(陽性化)가 특기인 나라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는 관행을 합법화하여 규제하고 나름의 강점으로 만든다. 엽관제(獵官制·spoils system)도 그중 하나다. 미국 정치에서 엽관제는 18세기 말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지지자들을 관직에 임명하거나 그들에게 다른 혜택을 주는 관행이다. 문제는 엽관제와 연고주의(cronyism)가 결합되는 경우다. 연고주의는 오랜 친구들에게 자격과는 상관없이 힘있는 자리에 임명하는 것이다.

자격 상관없이 오랜 친구 요직에 임명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통치기반이 된 그룹 중에는 ‘텍사스 마피아’가 있다. 부시는 코네티컷주 뉴헤이번에서 태어났지만 텍사스에서 자라났다. 2000년 대선에서 당선된 뒤 그가 고향 텍사스에서 알게 된 인사들이 대거 워싱턴으로 진출했다. 그전 대통령들도 같은 고향 출신들을 중용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는 ‘조지아 마피아’, 로널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마피아’, 빌 클린턴은 ‘아칸소 마피아’가 있었다. 이 ‘마피아’들은 대통령을 둘러싼 ‘이너 서클(inner circle)’, 즉 권력 중추부의 측근 그룹을 이룬다.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마피아’ 중에서는 칼 로브와 앨버토 곤잘러스 외에 댄 바틀릿(36) 전 공보고문(셋째 아들이 태어나 6월에 그만둠), 해리엇 마이어스(62) 전 법률고문(연방대법원 판사로 지명됐다가 함량 미달이라는 비난을 받음. 지난 2월에 물러났으며 연방검사 무더기 해임에도 연루됨)이 있다. 아직 남아있는 ‘텍사스 마피아’로는 캐런 휴스(50) 국무부 공보차관, 마거릿 스펠링스(50) 교육장관, 앨폰소 잭슨(62) 주택장관 등이 있다.

이 ‘정치마피아’들은 ‘주군(主君)’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한다. 그 과정에서 각종 추문이 폐해를 드러낸다. 레이건의 ‘캘리포니아 마피아’만 봐도 에드윈 미즈 II 전 법무장관, 마이클 디버 전 백악관 비서실 차장,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 등 이란콘트라 사건 관련 등 여러 이유로 곤욕을 치렀다. 클린턴 대통령의 ‘아칸소 마피아’도 ‘산 채로 먹혔다(got eaten alive)’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처럼 부시 대통령과 그 측근 ‘텍사스 마피아’의 사이도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정치 마피아’ 측근 중에는 ‘동락(同樂)’만 하고 ‘동고(同苦)’는 별로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진퇴를 알고 적당히, 특히 대통령의 임기 말 즈음에 떠나면 된다. 주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사임의 변을 남기며 떠난다. ‘가늘고 긴’ 길을 택할 수도 있다. 권력의 핵심에는 들어가지 못해도 정치적으로 장수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