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유전쟁] 40. 호랑이 할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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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민족사관고는 드넓은 산자락에 세워져 있어 학생들이 교실에서 식당으로, 식당에서 운동장.기숙사와 민족교육관 등으로 가는 동선(動線)이 길다. 그러다보니 모자를 비뚜로 쓰거나 옷섶을 흐트리고 걷는 학생이 종종 눈에 띈다. 선생님을 보면 건성으로 고개만 까닥하는 학생도 있다. 나는 그런 학생을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세워놓고 눈물이 날 정도로 호통을 쳤다. 실내에서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학생에겐 더욱 엄격하게 대했다. 행동거지뿐만 아니라 학업에 불충실한 학생은 직접 불러 아버지처럼, 할아버지처럼 타이르며 이유를 캐물었다. 게으름이나 정신적 해이 때문에 학업을 소홀히 하는 학생에겐 분발하도록 야단을 쳤다. 학생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가정사나 학교문제 때문이라면 적극 나서 해결해 줬다.

신입생들은 먼발치에서도 나를 보면 무서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아이들은 차츰 내 방식에 적응해 나가면서 나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규칙은 잘 지키기만 하면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자유롭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최명재식 규칙'에 적응하면 더 이상 나는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었다.

어느 날 밤 한 여학생이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가정교육관으로 찾아왔다. 남쪽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었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똑똑해 보여 도무지 빈틈이 없는 학생 같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어디 아프냐."

학생들에게 어머니 노릇을 해온 아내가 물었다. 학생은 고개를 저었으나 눈가엔 물기가 있었다.

"아프지 않다면, 친구와 다퉜느냐. 아니면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느냐."

마침내 학생은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우리 부부는 순간 말을 잊었다. 그럴 것이다. 왜 보고 싶지 않겠는가. 영재라고 사람이 아니겠는가.

"보고 싶으면 봐야지. 이번 주말에 엄마를 모셔와 가정교육관에서 하룻밤 함께 지내면 될 것 아니냐."

학생은 눈물을 닦았다. 눈물을 보인 스스로를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었다.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싶다고 해라.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다."

공부가 즐겁다는 아이들이지만 다른 감정이 메마른 건 아니다. 오히려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이다.

체벌을 받은 한 남학생이 긴 글의 편지를 보내왔다.

"여러 친구 앞에서 회초리를 맞을 때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태어나 처음 맞는 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맞은 자리가 신체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느껴집니다. 이사장님도 두려운 분이 아니라 자상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지구요. 성인이 된 후에도 저를 이끌어 주세요. 이사장님 같은 할아버지가 계시는 한 저는 학문의 길에서도 인생의 길에서도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전교생 50명의 마음속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다. 이제 그들이 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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