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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추사’ 쓴 한승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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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소설가 한승원(68·사진)씨가 새 장편 『추사』(열림원)를 내놨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삶과 예술세계를 풀어낸 소설이다. 때마침 『남한산성』『리진』 등 역사소설 바람이 거셀 때 아닌가. 2003년작 『초의』이후 줄곧 역사소설에 매달리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한씨는 “『추사』를 역사소설로 읽지 말라”고 못박아 말했다. 그러면서 “난 역사실록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한 인물을 형상화시킨 현대소설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씨는 지난 2년 내내 추사의 발걸음을 뒤쫓으며 살았다. 『완당전집』『추사집』『추사 김정희의 또 다른 얼굴』등 추사에 관한 기록은 모조리 구해 읽었다. 또 추사와 관련된 토론회와 연구발표회 역시 발이 닿도록 찾아 다녔다. 그리고 추사 속으로 그 자신이 들어갔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산책을 하면서도 여행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추사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추사가 된 꿈도 꿨죠. 청나라 연경의 친구들이 벌여준 송별연에 참여하고 나오다가 갓신을 잃어버린 꿈도 꾸고, 제주도에 위리 안치된 꿈도 꿨어요.”
 
왜 하필 추사였을까. 한씨는 그 이유로 “반복되는 역사”를 들었다.

“추사와 그의 시대를 읽어보면 아주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개혁세력인 추사를 기어이 죽이려는 세력이 있죠. 오늘날 이 땅의 거대한 보수집단과 같습니다.”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세력. 한씨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권은 모두 ‘거대한 보수집단’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추사의 삶을 되돌아보며 나 스스로를 연마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지순지고한 세계로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소설 속 추사는 ‘추사체’로 대변되는 한 서예가의 테두리를 넘는다. 북학파 선구자로서의 추사, 세도정치와 당당히 맞선 정치가로서의 추사, 양자와 서얼 자식을 둔 한스런 아비로서의 추사가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추사에 관한 기존 평전은 당시 역사적인 상황을 제대로 못 읽고 있어요. 미술사가들이 보는 추사만으로는 그를 제대로 조명할 수 없지요. 신필(神筆) 뒤에 가려져 있는 추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소설을 썼어요.”

그가 찾아낸 추사는 한마디로 개혁가다. 세상을 올바로 바꾸어 놓으려다 보수 반대파들에게 고난을 당한 게 추사의 삶이다. 조선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놀아나는 동안 추사는 북학파의 선구자로 활동하며 청나라의 근대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쪽에 서 있었다.

영조의 외증손주였던 추사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24세에 중국 연경에 다녀왔을 정도로 부귀영화도 누렸다. 하지만 안동김씨 세력에게 눈엣가시가 된 뒤 결국 광기 어린 시대의 희생자가 돼 50대 후반부터 제주도 유배 9년, 북청 유배 2년의 힘든 삶을 살았다.

소설은 인간 삶의 마무리에 대한 화두도 던진다. 『해산 가는 길』『아제아제 바라아제』『사랑』 등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온 그의 작품세계와 맥이 닿아있다.

“책 첫 장에 보면 ‘하늘천(天)과 닮은 글자 없을무(无)’란 구절이 나옵니다. 또 하늘의 동의어로 태허(太虛)를 들고 있죠. 결국 태초의 텅 비어있는 상태로 가는 것, 시원(始原)으로 돌아가는 게 인간 삶의 마무리이자, 예술세계의 최고도달점이 아닐까요.”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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