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행 중 다행으로 끝난 아프간 인질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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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프가니스탄의 반(反)정부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 19명 전원을 석방하기로 한국 정부 협상단과 어제 저녁 최종 합의했다. 41일째 마음 졸이며 사태 추이를 지켜봐 온 우리 국민의 막힌 가슴을 뚫어 주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비록 2명의 인질이 희생되긴 했지만 이 정도 선에서 사태가 해결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남은 인질의 전원 석방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낸 정부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남은 절차가 신속히 마무리돼 19명 전원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발표된 합의 내용에 따르면 연내에 아프간에 주둔 중인 한국군을 전원 철수하고, 아프간에서 활동 중인 한국의 비정부기구(NGO) 소속 민간인도 이달 내 모두 철수하며, 다시는 아프간에서 기독교 선교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조건으로 인질을 모두 풀어 주는 것으로 돼 있다. 전후 복구와 의료 지원을 위해 아프간에 주둔 중인 동의·다산부대 소속 200여 명의 장병은 어차피 연내에 철수하기로 돼 있다. 또 정부는 이미 아프간을 해외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하고 현지 교민의 철수를 독려 중이다. 기독교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프간 내 선교 활동을 자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인질 석방에 필요한 최소한의 명분만 탈레반에 제공하는 선에서 협상이 타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탈레반은 당초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의 맞교환을 석방 조건으로 고집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정부 협상팀의 큰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아프간 정부와 미국이 고수해 온 ‘테러단체에 양보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몸값 지불 약속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국제적 관례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본다.

3~4명씩 흩어져 있는 인질들이 가장 빠른 시일 내 모두 풀려나 무사히 귀국할 때까지 정부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정리는 인질들이 모두 귀국한 뒤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