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정상회담, 6·15선언 2항 구체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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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과 북은 이미 평화·공동번영, 그리고 통일을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로 설정했다. 다분히 공감 가는 의제 설정이다. 평화의 경우 북핵 문제, 정전협정의 한반도 평화체제에로의 전환,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 군비 통제, 그리고 군축 등 다양한 현안이 의제로 다루어질 것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남의 역할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공동번영의 의제도 어느 정도 어림잡을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 연동된 에너지 및 경제 지원, 사회간접자본 지원, 개성공단 및 금강산 사업의 확장과 활성화, 북의 경제특구 개발 참여, 제조업 분야의 협력, 북방경제권의 공동 구상, 그리고 개방·개혁과 관련된 아이디어와 정책의 공유 등 여러 의제가 심도 있게 다루어질 것이다.

통일에 관한 의제는 6·15 공동선언 2항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공동선언 2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여 나가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그러나 그동안 공동선언 2항은 숱한 오해와 비판을 받아 왔다.

통일 지향의 진보적 인사들은 남과 북이 지난 7년간 공동선언 2항의 실천에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비판을 가하고 있다. 반면에 일부 보수 인사들은 2항이 북측의 연방제를 교묘한 방식으로 수용한 것으로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통일 방안을 정면에서 위배하는 합의라고 매도해 왔다.

전자의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고 보이나, 후자는 다분히 왜곡된 해석이라 아니 할 수 없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은 네 시간에 걸친 공식 회동 중 거의 한 시간 이상을 통일 문제에 할애했다. 여기서 김정일 위원장은 “김 대통령께서 평양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셨으니 연방제 통일 방안을 7000만 우리 민족에 선물로 주자”고 화두를 열면서 연방제 안에 대해 매우 공세적 입장을 취했다.

이에 김대중 대통령은 연방제 통일 방안이 그리 용이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예멘 사례를 들었다. 남북 예멘이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했지만 군사 통합에 실패하면서 북예멘이 남예멘을 무력적 방식으로 흡수 통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연방제보다는 남북 간의 국가연합이 훨씬 현실적 방안이라는 점을 피력했다고 한다.

여기서 남북연합이란 유럽의 경우처럼 남북이 각각 국가 주권을 유지하지만 다양한 협의체를 통해 협력과 통합을 제도화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남북 간에 사람과 물자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사실상(de facto)의 통일’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도 김 대통령의 이러한 견해에 동조했고, 이를 명문화한 것이 바로 공동선언 2항이라는 것이다.

특히 김 대통령이 역점을 두었던 대목은 정상회담의 정례화였다. 남북 수뇌 간에 정상회담을 자주 할수록 전쟁의 가능성은 적어지고 평화와 공동번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지극히 자명하다. 그리고 정상회담이 정례화되면 후속 조치로 남북 간 연석 각료회의가 정기적으로 열릴 수밖에 없다. 특히 국방장관과 경제 각료 회담은 필수적이다. 또한 이와 병행해 남북 국회회담도 동시에 개최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남북 행정부처 간 합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남북연합이 제도화되면 한반도 평화·번영·통일의 가능성은 가일층 높아질 것이다. 아무쪼록 10월 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 2항의 구체화 작업이 이루어져 남북연합 구상에 가시적 진전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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