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식품관리,선진국서배우자] 미 식중독 사망 연 5000명 … 방사선 살균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식중독 환자 수 연간 7600만 명,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자 수 연 5000명. 세계 최고 수준의 식품위생 관리 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의 현실이다. 미국도 예외 없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병원성 대장균 O-157 등 세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된 최선의 대안은 식품을 방사선으로 처리하는 것. 이미 오래전 안전성이 확보됐지만 ‘방사선’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해소시키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와의 갈등 속에서도 방사선 처리 식품은 늘고 있다. 채소·과일·향신료는 물론 쇠고기·닭고기·굴 등에까지 방사선을 쬔 뒤 출하한다. 식중독 사고를 줄이기 위해 방사선 조사 식품을 늘리고 있는 선진국의 고민은 무엇일까. 이 기사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의 취재지원으로 이뤄졌다.  

 ◆식중독 사고의 유일한 대안= 미국 정부가 식품에 방사선 처리를 허용한 것은 1963년부터. 초기엔 향신료·허브 등 주로 식물성 식품에만 방사선을 쬐도록 했다. 그러다 9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쇠고기 등 식육에 대해서도 허용했다. 하지만 식육 안전의 주무 부서인 미국 농무부(USDA)의 최종 OK 사인을 받는 데 다시 2년이 소요됐다.

 USDA 카렌 스턱은 “소비자 단체의 반대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병원성 대장균 O-157에 오염된 쇠고기 분쇄육(특히 햄버거 패티)에 의한 식중독 사고가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결정적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가공되는 식품의 절반만 방사선 처리를 해도 식중독 환자 수를 매년 90만 명 줄이고, 352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FDA 스티븐 니델만 박사는 “2005년 8월엔 굴·홍합·대합 등 어패류에 대한 방사선 처리까지 허용했다”며 “이는 살모넬라균·비브리오균 등에 의한 식중독 사고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방사선처리업체 직원이 자사에서 방사선 처리한 쇠고기 분쇄육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정부는 병원성 대장균 O-157 식중독 사고가 급증하자 식육에 대한 방사선 처리를 허용했다. [플로리다=박태균]

◆소비자 설득이 관건=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주변 대형 마켓(크로거·월마트). 기자는 이곳 식품 코너에서 방사선 처리 식품을 찾았다. 하지만 ‘라두라’(Radura, 중앙에 꽃 그림이 그려진 원) 로고와 ‘irradiated’(방사선 처리)라고 쓰인 식품은 눈에 띄질 않았다.

 식품 코너 담당 시니먼은 “방사선 처리 식품을 보려면 일반 마트보다 학교 급식 카페테리아에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의 기피와는 달리 FDA와 USDA는 식품의 방사선 처리가 안전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매일 2700만 명이 이용하는 학교 급식에도 방사선 처리 육류의 사용을 허용한 것이 단적인 예다. 다만 방사선 조사식품이 자녀의 성장 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학부모가 많은 것을 감안, 허용 여부는 학교 자율에 맡기고 있다.

 대국민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USDA 진 다니엘은 “불안감을 나타내는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며 “지속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선=87년부터 살균·발아 억제·살충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식품에 방사선을 쬐고 있다. 처리된 식품은 반드시 제품 라벨에 ‘방사선 조사식품’이라고 표시하도록 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6월 발생한 사상 최대의 학교 급식 사고를 계기로 방사선 조사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방사선 처리 시설은 두 곳에 불과하다. 또 국민 다수가 ‘방사선 조사식품=방사능 오염식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국내에서 적색육은 물론 닭고기까지 방사선 처리 불가 식품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충남대 식품영양학과 육홍선 교수는 “소비자 교육·홍보를 통해 방사선 처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DC·애틀랜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방사선 처리=식품에 방사선(감마선)을 쬐어 식중독균을 죽이는 것. 보존료(방부제)·훈증제 등 기존 방법을 쓰면 유해물질이 식품에 일부 잔류하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2004년 현재 세계 52개국이 230종의 식품에 대한 방사선 처리를 인정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