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실 유치 더이상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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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행범이나 긴급구속 대상이 아닌 피의자를 영장없이 경찰보호실에 유치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경찰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현재와 같은 관행이 불법이란 점은 인정하면서도 피의자의 도주나 증거인멸을 막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관행을 고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보호실 유치를 거부하는 피의자와 경찰관 사이의 실랑이도 자주 빚어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일단 법은 지켜야 한다고 본다. 경찰이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인데 그 국가기관부터가 법을 불법적으로 집행한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일이다. 또 법적 정의의 추구는 그 결과만이 아니라 절차도 합법적일 것을 요구한다.
설사 피의자가 결과적으로 유죄임이 확정적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 유죄 확정의 과정이 불법적인 것이었다면 유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대의 법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너무도 지당한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경찰은 우선 불법적인 관행의 개선에 나설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일부 시범경찰서가 창살없는 보호실을 설치하고 있으나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뿐 불법적인 구금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경찰로서는 현행범이 아닌 일반 피의자에 대해서는 사전에 증거를 충분히 수집하여 영장을 신청하는 쪽으로 수사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피의자는 일단 구금해놓고 그 때부터 조사를 통해 증거를 수집하는 식의 현행 수사관행은 이제는 버려야 한다.
다만 경찰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보완책은 마련돼야 한다. 그중의 하나가 검찰이 경찰의 영장신청에 대한 결재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일선 경찰관들은 신청한 영장에 검사의 결재시간이 너무도 길다고 말한다. 또 검사가 일처리의 편의를 위해 영장신청을 몰아서 해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조사가 이미 끝난 피의자도 불필요하게 장기 구금된다는 것이다.
조사가 끝났으면 그때 그때 영장을 신청하고,검찰 역시 즉시 검토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한다면 불법구금 문제는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야간에 발생한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는 야간당직 검사와 판사 수도 늘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운용개선으로 해결하기 힘든 경우의 해결책으로는 체포장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찰이나 검찰에 의한 체포장 발부는 위헌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고 법원에 의한 체포장 발부가 현행 헌법 테두리안에서 고려해볼만한 대안의 하나다. 그러나 이 안 역시 불법구금의 합법화나 남용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당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면서 문제를 공론화하는 길밖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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