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일자리 천국, 일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호 07면

아베 일본 총리(사진 맨 오른쪽)가 고령자 고용 촉진 사업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70대 안팎의 고령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제품을 운반하고 있다. [사진=일본 지지통신]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82세다. 세계 최고 장수국이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2005년에 이미 20%를 넘었다. 경제대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이지만 월 12만 엔(약 97만원) 수준의 연금만으로는 노후 생활이 어렵다. 또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각자 몸관리에도 철저하기 때문에 일본의 노인들은 체력 면에서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 퇴직 후 제2의 직업을 갖는다.

백화점서 ‘은빛 미소’로 손님 맞아

일본 도쿄에서 가장 번화한 신주쿠 니시구치는 백화점과 쇼핑센터들이 즐비한, 젊은이 거리다. 하지만 매장에서 손님을 맞는 점원들은 백발의 노인들이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찾으십니까.”

오다큐 백화점 6층 생활용품 매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야마시타(69)씨는 침구류 판매를 맡고 있다. 고객의 주문사항을 바로 이해하고 적절한 상품을 권유하는 데 능숙해 인기가 높다. 풍부한 사회경험이 도움이 됐다.

공공기관에서도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쿄의 남서부에 위치한 사메즈 운전면허시험장에 근무하는 스즈키(70)씨. 붉은 모자와 근무복을 차려입고 밀려드는 민원인들을 빈틈없이 안내한다. “줄만 잘 세우면 되니까 그다지 힘들지 않고 할 일도 있어 늘 만족한다”고 그는 말했다.

일본 고령자들은 판매원이나 안내인 등 단순한 일자리를 갖고 있다. 풀베기·가로수 소독 등 간단한 노무직, 페인트칠·가전제품 수리 등 기술직, 가스 검침·수금 일도 노인들의 몫이다. 간단한 사무, 관광가이드, 교통정리, 보습강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1주일에 20시간이 넘지 않는 가벼운 일을 주로 한다.

다니던 회사에 재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몇몇 운송회사에선 밀려드는 화물에 맞춰 트럭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젊은 층이 운전기사 일을 기피하는 바람에 퇴직자들을 불러모았다. 상당수가 “집에서 놀아보니 심심하다”면서 다시 핸들을 잡았다. 재취업 전 간단한 체력 테스트를 거쳤는데, 퇴직자들이 40대 현역을 팔씨름으로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택시 운전도 퇴직자 몫이다. 기사와(72)씨는 2004년 40년 동안 다니던 대기업을 퇴직한 뒤 핸들을 잡았다. 생활비의 반은 연금에서, 나머지 반은 택시 수입으로 충당한다.

노후 대비를 철저히 해온 고령자들은 퇴직 후 직업선택이 더 자유롭다. 나카야마씨는 2년 전 35년간 근무한 부동산관리회사를 퇴직하면서 일본어교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저축과 퇴직금이 넉넉한 데다 연금까지 나와 경제적인 걱정은 없기 때문이다. 13개월 교육을 받고 일본어 교사 자격증을 딴 뒤 매주 토요일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본어와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정부도 노력한다.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내년 4월부터 모든 기업은 정년을 65세까지 5~7년 늘려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ㆍ덩어리)세대’가 한꺼번에 퇴직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줄여보기 위한 조치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일손 부족 현상을 해결하는 효과도 있다. 일본은 퇴직자를 위해 다양한 일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며 퇴직자의 재취업을 당연하게 여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