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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에 찾는 추어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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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27면

말복을 보내고 처서가 지났는데도 더위가 꺾일 줄 모른다. 그래서 찾은 곳이 추어탕집.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추어(鰍魚)는 문자 그대로 보면 가을 물고기인데, 여름에 보양식으로 많이 찾아요. 얼마 전 설문조사에서도 추어탕이 여름철 보양식 가운데 서너 번째로 꼽혔다고 하네요.”
“예전 농촌에서는 벼가 노랗게 물들면 논에서 물을 빼고 논가의 도랑을 치면 진흙 속에 숨어 있는 미꾸라지를 잔뜩 잡을 수 있었지. 여름내 자란 미꾸라지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가을에 가장 맛이 있었으니까 추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개울가에서 끓여 먹던 민물매운탕처럼 여름에 농사짓는 이들에게는 미꾸라지탕도 좋은 영양식이었겠지. 더운 여름날 땀 흘리며 먹는 맛도 그만이잖아.”
“오래전부터 추어탕을 먹었을 것 같은데 조선시대 요리책에는 등장하지 않네요. 너무도 서민적인 음식이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요리책이 아닌 1850년께에 펴낸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추두부탕(鰍豆腐湯)’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요. 미꾸라지와 두부 몇 모를 같이 넣고 끓이면 미꾸라지는 뜨거워서 두부 속으로 기어드는데, 이것을 썰어 지진 뒤에 끓인 탕이라고 하죠. 이 탕을 서울 성균관 근처에 살던, 소를 도살하거나 쇠고기를 파는 천민들이 즐겼다고 해요.”
“서울의 추어탕은 장안의 걸인 조직이었던 ‘꼭지’의 우두머리인 ‘꼭지딴’들이 청계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끓인 해장국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도 있어. 그 해장국 끓이는 냄새에 이끌린 주변 상인들이 이를 사먹게 되고, 점차 많은 사람이 찾게 되면서 대중적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하지.”
“1920년대 후반과 30년대 초 서울에 유명한 추어탕집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하니 추어탕이 이제 더 이상 천민의 음식이 아니라 대중적인 음식이 된 증거랄까요. 1924년에 나온 요리책'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추어탕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고, 게다가 추어탕의 조리법이 지방마다 다르니 전국적으로 즐겨 왔다고 볼 수 있죠.”
“지방마다 끓이는 법이 다르다고 하는데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느냐, 삶아서 갈아서 넣느냐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겠지. 미꾸라지를 갈아서 넣는 남도식 중에서 경상도식은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어 솎음배추·토란대·고사리·싸리버섯 등을 넣어 끓이고, 전라도식은 경상도식처럼 끓이면서 된장·시래기·들깨즙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뒤 고추를 갈아 넣어 매운맛을 내지. 반면 서울식 추어탕이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사골과 내장을 끓인 고기 국물에 끓여 내고, 이름도 ‘추탕’이라 다르게 불러왔지.”
“재미있는 건 서울의 추어탕집 이름의 절반이 ‘남원 추어탕’이란 점이죠. 아마도 미꾸라지가 통째로 나오는 서울 추탕이 거북스럽기 때문이겠죠. 더욱이 1960년대 남원의 ‘새집추어탕’에서 시작한, 뼈를 발라내고 갈아 넣어 부드러운 맛이 나는 추어탕이 서울 입맛을 지배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서울식 추어탕을 먹으러 서울 다동에 있는 75년 역사의 ‘용금옥’(02-777-1688)을 찾았다. 긴 세월 속에 이 집을 드나들던 유명한 인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남북회담 때 북측대표로 온 서울 출신 인사가 “요즘도 용금옥 추탕 맛이 여전하냐”고 물어보았다는 말도 있다. ‘용금옥’의 추탕은 사골과 양곱창을 푹 고아서 낸 국물에다 통미꾸라지와 버섯·두부·유부를 넣고 계란을 풀어 육개장처럼 얼큰하게 끓여 낸다. 땀을 흘리면서 먹고 나니 이것이 추탕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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