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개혁은 말뿐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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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예산편성 방법과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주먹구구식 편성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밝힌 지난해 정부예산 감사내용을 보면 사용되지 않은 규모가 총예산의 3%에 달하는 1조1천8백96억원으로 이중 절반정도가 사용할 필요가 없어 남은 예산이다. 재무부 집계로는 그 두배인 2조6천억원이나 된다. 이는 국제화시대를 맞아 정부부문의 효율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다.
정부부문에서 기구축소다,합리화다 하고 개혁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예산을 초기에 과다계상했거나 낭비하는 구습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이 실증된 셈이다. 각 부처나 기획원 예산담당자들은 예산편성시기와 집행시기의 상황이나 정책변경 오차 등을 이유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감사원 자료에도 나타나 있듯이 예산절감 및 사업규모 축소 등의 집행계획 변경에 따른 미사용액은 전체 미사용액중 각각 14.8%와 10.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감사에서는 각 부처의 과다예산계상,전용,공사낙찰차액 사용,불필요한 물품구입 등 낡은 관행이 아직도 큰 문제가 되고 있음이 지적됐다. 각 부처의 예산담당자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해 일단 예산을 줄여놓으면 경직적인 관행 때문에 필요가 생겨 늘리려고 해도 불가능하게 되는 실정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민이 부담하고 있는 세금을 주된 재원으로 하는 예산을 너무 과다하게 책정해놓고 사용도 못했다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장부상 미사용액의 규모가 이럴진대 연도말에 쫓겨 낭비한 예산의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구태의연한 예산집행을 하면서도 정부모습이 환골탈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올해들어 사회간접자본 확충,교통시설 및 농어촌 구조조정의 목적으로 각종 세금을 신청하면서 국민의 부담을 늘려온 정부가 이같이 방만하게 예산을 짜는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무슨 명분으로 앞으로 국민부담을 요구할는지 정부 스스로 심각한 반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경제상황에 대한 보다 정밀한 예측과 정부사업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 등의 예산기법이 정착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이 정도면 되겠지,혹은 우선 많이 확보해놓고 보자는 식의 편성은 지양되어야 한다. 예산이 필요이상으로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초부터 불필요하게 국민부담을 늘려놓고는 제대로 사업도 집행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이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예산편성과 집행사이의 신축성을 늘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적응할 수 있는 여지를 늘려야 한다. 정부서비스는 최선의 질을 추구하면서 최대의 효율성이 동시에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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