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때그사람>67년 북한산 정상서 결혼식 정봉구.이정자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3월 첫날은 일제 핍박속에서 우리민족이 거국적으로 독립만세를외친 3.1절.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는 독립투사와 가족들이 많겠지만 鄭鳳九(53.대우건설사업부 陽洞현장부장).李貞子(51.아명 周垠)씨 부부만큼 또다른 의미로 새롭고 포근 하게 하루를 맞는 사람들도 흔치 않을 것같다.
67년3월1일 낮12시.남산의 사이렌이 은은히 정오를 알리던시간,그들은 북한산 꼭대기 白雲臺에서 호기심어린 등산객들의 눈총과 친구들의 축하세례를 받으며 약혼식을 올렸다.
『하느님이 우리의 약속을 지켜보는 것같아 몹시 두근거리더군요.반지를 건네줄때 손이 떨리던 기억이 나요.』 당시 한양대공대4학년때였던 鄭부장은 생활이 어렵기도 했지만 꼭 1년전인 66년3월1일 부인 李씨를 만난 곳이 백운대 정상이었기 때문에 경비도 줄일겸 북한산 정상에서 약혼식을 했고 이듬해 10월 김포공항에서 야외결혼식을 올렸다.鄭 부장 부부의 독특한 약혼식은 당시 각종 매스컴에 대서특필,화제가 됐고 청와대에서도 李厚洛비서실장 이름으로 축전을 보내왔다.
그는 피부가 유난히 곱고 예뻤던 부인을 보고 첫눈에 반했지만당시 친구들도 많았고 접근하기도 어려워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고 되새겼다.李씨는 첫눈에 반했다는 鄭부장의「아프터」약속을 못이기는척 받아들였다.
『만남이 잦아지면서 프로포즈를 받았지만 고민이 많았어요.무남독녀 외동딸을 7남매 대가집 장손에게 보내는 부모의 반대가 강력했어요.과묵하고 다정하면서도 집착력이 강한 남편이 아니었다면혼사가 어려웠을 겁니다.』 결혼초엔 예상했던대로 힘겨운 살림살이에 숱한 고통을 겪었다고 털어놓는 李씨는 남편과 시동생들의 협조로 27년동안 白雲臺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단 한번의 부부싸움도 없이 70대 노부모를 모시고 막내 시동생을 출가시켰을 때 엔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고 회상했다.
『취미가 비슷한 우리 부부는 언제나 친구처럼 어울립니다.가끔영화나 연극도 가고 주말엔 옛 생각을 하며 백운대에도 오르죠.
최근 북한산에 가까운 쌍문동으로 이사와선 산에 오르는 횟수도 잦아졌습니다.』 현재 서울북공고 3학년에 다니는 외아들 雨植이가 한개를 따내기도 어렵다는 기술사(시공.건설안전관리)를 두개씩이나 따낸 아빠를 닮아 멋진 건축가가 되길 희망한다는 鄭.李씨부부는 올 3월엔「언제나 청춘」처럼 살기로 다시한번 약속했다고 밝게 웃었다.
〈裵有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