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버림받은 내게도 햇살이 …” 한 차원 진화한 사랑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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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운명을 중시하는 동양적인 사고 때문일까. 대개의 한국인들은 원망하고 아우성치면서도 부모 자식 같은 ‘운명적인 관계’는 끝까지 함께한다. 입양이나 위탁모 같은 ‘선택하는 사랑’에는 인색하다. 혈연의 속박 없이도 누군가를 자유의지로 사랑하고 헌신하는 거야말로 한층 고차원적인 사랑이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캐더린 패터슨의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비룡소)는 ‘엄마 찾아 삼만 리’ 부류의 스토리가 갖는 모성 회귀의 진부함을 훌쩍 뛰어넘는다. 눈부시게 진화한 사랑의 세계로 독자를 끌어간다. 사랑도 용서나 배려처럼 누군가에게 배우는 후천적 체험학습의 결과물이라면, 버림 받은 질리에게 사랑이 부족한 건 당연한 일. 온갖 형태의 사건 사고로 분출되는 질리의 위악은 그 애만이 해석할 수 있는 고독한 사랑의 암호였다. 질리는 성이 나면 시속 40㎞로 맹렬히 돌격한다는 코뿔소처럼 아무에게나 덤벼든다. 문제는 질리가 휘두르는 적대감의 칼날에 베인 바람 속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달짝지근한 훈풍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떼밀어 봐도 새 위탁모 트로터 아줌마는 그 거대한 엉덩이만큼이나 사랑의 저장탱크도 만만찮아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불쌍한 윌리엄 어니스트는 미워하기엔 너무 사랑스럽고, 랜돌프 아저씨는 멸시하기엔 너무 존경스럽다. 이들 속에서 질리는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말로는 서로를 알 수 없는 거라는 걸.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함께 겪어 봐야 한다’는 진리를. 이 책은 일방적으로 고조된 갈등이 양방 간의 사랑으로 변환되는 작품에서 종종 맞닥뜨리게 되는 어색한 봉합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촉촉한 해빙의 감동에 오래도록 잠겨 있게 한다.

 질리가 무지개 너머 또 다른 사랑의 세계를 보여준다면, 구두룬 맵스의 『그 여자가 날 데려갔어』(시공주니어)는 깨어진 운명의 사랑에 집착한 모성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아이 잃은 슬픔에 빠져 유괴라는 자각도 없이 한 아이를 납치 감금한 여인. 그런데도 아이는 그녀를 증오의 대상이 아닌, 연민의 대상으로 감싸주고 자기가 아끼는 미키 마우스 시계를 선물하고 돌아온다. 아이가 가진 사랑의 눈금자는 결국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떠나는 그녀의 폐쇄적인 사랑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대상 연령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사랑의 은총이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으로 쫓아야 할 파랑새라는 사실에 둔감한 11세 이상의 어린이와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서고 싶은 엄마들.

임사라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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