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교수의열린유아교육] 휴가 가서도 지식 넣어주나요 … 정이 먼저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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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남해로 피서를 갔다. 딸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부터 아이들을 동반한 휴가가 우리 집에서 사라졌었는데 엄마·아빠들이 바빠 제대로 휴가를 못 가는 손녀·손자들이 안쓰러워 데려 가기로 했다. 바다에서 아이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젊은 엄마·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예 휴가를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직장일로 지친 젊은 부모들은 쉬고 싶어 아이들과 조용한 휴가를 보내고 싶지만 그들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바캉스는 현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휴가가 아니라 전쟁이다. 엄마·아빠들이 자신들의 휴식은 제쳐두고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려 하면 아이들은 들은 체도 안하고 별 소용도 없는 빈 조개껍질만 줍는다. 또 너무나 예쁜 야생화가 있어 이름을 가르쳐 주려 하면 아랑곳하지 않은 채 땅에 기어가듯이 누워 지렁이나 개미를 들여다보며 여념이 없다.

 이건 아주 괜찮은 상황이다. 엄마·아빠가 가르치려는 태도를 접고 편안하게 지내면 어른·아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아이들이 안전 수칙을 지키는지 계속 살펴보아야 한다. 문제는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며 더운데 엄마 곁에 딱 달라붙어 있어 땀띠가 날 정도인 아이들이다. 이런 경우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봐 줄 수 없어 신경질이 난다. 또 말로 분명히 하면 들어 줄 일인데 징징거려서 알아들을 수 없게 하거나, 별일도 아닌 데 동생과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을 보면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다. 이런 상황은 맞벌이 부모와 유아기 자녀들 사이에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부모와 보내는 시간의 양이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유아기 아이들은 해바라기와 같아서 부모를 향해 항상 마음을 열고 있지만 맞벌이 엄마 아빠는 평소에 이 마음을 채워 줄 수 없다. 그러니 피서지에서라도 그 양을 채우고 싶어 아이들은 온갖 행동을 다 한다. 엄마·아빠의 사랑이 마음에 채워지지 않으면 재미있는 것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아이들을 많이 품어주고 뽀뽀해주고 함께 구르면 된다. 엄마·아빠가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낌새를 느끼기만 하면 아이들은 자연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리고 온갖 궁금한 것들을 발견하고 질문을 한다. 이때 가르쳐도 늦지 않는다. 지식보다 정을 먼저 쌓는 것이 유아교육의 본질이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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