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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함박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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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이 궁금증을 처음으로 실험을 통해 푼 사람은 일본의 과학자 나카타니 우키치로다. 그는 섭씨 영하 30도까지 내릴 수 있는 저온실 속에 토끼털을 매달아 놓고 바로 그 아래에서 물이 담긴 그릇에 열을 가해 수증기를 발생시켰다. 그러자 증기 입자는 토끼털에 얼어붙으면서 여러 형태의 눈 알갱이(결정)로 변했다. 1936년의 일이다. 이 실험의 성공으로 스키장 등지에서 쓰는 인공 눈도 탄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눈은 기온이 영하일 때 구름에서 생겨 내려오는 작은 얼음 결정이다. 기상 조건에 따라 그 결정은 수없이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 평평한 육각형, 모난 기둥, 나뭇가지 등…. 돋보기나 현미경에 비친 눈 결정체는 신비롭기 짝이 없다. 미국의 월슨 벤틀리 같은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 빠져 죽을 때까지 6천여종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기온이 영하 1~5도로 포근하면 작은 눈 결정은 공중에서 내려오면서 서로 엉켜붙어 큰 눈송이로 발전한다. 점성이 있어 잘 뭉쳐지는 함박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면 매섭게 추운 날에는 잘 달라붙지 못해 가루눈이 되고 만다. '눈발이 잘면 춥다'는 속담은 이런 원리에서 나왔다.

우리 조상들은 겨울에 풍성한 눈이 오기를 고대했다. 특히 천지를 순식간에 은(銀)세상으로 만드는 함박눈이 농사와 사람에게 모두 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매년 봄 가뭄에 시달려야 하는 한반도의 기후 특성상 들판과 산에 소복이 쌓여있다가 녹은 물을 천천히 땅속으로 흘려보내주는 함박눈이야말로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또 큰 눈이 잦은 해에는 병해충이 적어지게 마련이다. '손님은 갈수록 좋고 눈은 올수록 좋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함박눈이 내린 날에는 이상하리만큼 세상이 조용하다. 소리가 눈송이 속의 작은 공간으로 들어가 부딪치면서 에너지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천연' 방음재(防音材)가 집과 도로변에 쌓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특히 눈은 인간이 가장 듣기 쉬운 주파수 대의 소리를 잘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만에 서울.경기지역에 함박눈이 내렸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려는 자연의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