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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단·CD 활용, 으르고 달래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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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12면

‘탈레반이 부활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한 2006년 여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5㎞ 떨어진 니야즈에 사는 의사 아마둘라는 이른 아침 집 마당에서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금방 만든 듯한 DVD 케이스였다. 제목은 ‘스파이의 최후’. 마스크를 쓴 탈레반들이 신의 이름으로 남성 6명을 참수하는 장면이 담겼다. 밤사이 이런 DVD 수백 장이 니야즈 곳곳에 뿌려졌다.

탈레반 프로파간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집권 기간에 “이슬람 원리주의에 반(反)한다”며 DVD는 물론 CD 플레이어, TV 시청, 사진촬영 등을 금지했다. 하지만 세력을 재규합한 탈레반은 자신이 금지한 문명의 이기들로 무장한 채 전선에 나섰다.

“탈레반은 대소련 항쟁과 종족 간 분쟁, 탈레반과 다국적군의 교전으로 수십 년간 피폐해진 아프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부활에 성공했다.” 유럽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나 센리스위원회(Senlis Council) 등 전문 연구기관 분석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네오 탈레반은 한 손에는 ‘공포’, 또 다른 한 손에는 주민들을 ‘위무’하는 두 얼굴의 선전술(propaganda)을 구사하고 있다. 탈레반의 프로파간다는 79년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에 대한 게릴라 항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게릴라들은 라디오방송 등 미디어를 이용해 ‘지하드(성전)’를 선전하며 요원을 충원했고 자금을 조달했다. 지금은 지하드의 대상이 소련에서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이 주도하는 국제안보지원군(ISAF), 친미 카르자이 정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성전의 성격도 독립에서 ‘서방 기독교 십자군’의 침략 분쇄로 바뀌었다. 탈레반의 선전활동은 전통적인 전단(傳單) 살포에서 비디오테이프 제작, 인터넷·휴대전화를 통한 외신과의 인터뷰 등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탈레반 지도부는 자신들의 주장을 가감 없이 전해주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즐기고 있다. 지난 5월 영국군 특수부대에 의해 피살된 물라 다둘라는 정기적으로 외신과 인터뷰하며 그를 쫓는 ISAF의 김을 빼기도 했다. 한국인 납치사건이 발생한 뒤 대변인으로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의 종횡무진 인터뷰도 한 예다.

신기술을 접목한 선전은 점차 정교해지고 있다. 탈레반 집권 시절 관료였던 언론인 와히드 무즈다는 “알카에다 조직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는 증거들이 확연하다”고 말한다. 외주 제작인 경우도 있다. 지난 연말 이후 남부 지역에 뿌려지는 비디오테이프들은 ‘탈레반 공보부 제작’이란 설명이 붙어 있고, 탈레반 지도자들이 자살 폭탄테러에 나서는 소년을 격려하는 모습 등을 담고 있다. 미국 지도에 로켓포가 날아가는 모습의 그래픽까지 동원했고, 화면 아래엔 아랍어 자막을 깔았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선전 수단은 전통적인 전단 살포다. 아프간 내 TV 보유율은 1000명당 3.7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단은 심야에 뿌려진다. 카르자이 정부의 비정통성을 강조하고, 외국인과 접촉하지 말 것,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말 것 등을 경고한다. 대체로 마지막 구절은 살해 위협으로 끝난다. 경고 대상자의 이름을 정확히 쓴 전단을 벽이나 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탈레반은 경고를 지키지 않을 경우 곧바로 ‘처벌’함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했다. 학교를 폭파하는 테러도 숱하다. 아프간 교육부는 2005년 7월부터 1년 동안 144개 학교가 파괴됐고 10만 명의 어린이가 수업받을 기회를 빼앗겼다고 보고했다.

‘공포’는 지난 수십 년간 유혈분쟁 속에서 살아온 아프간인들을 장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특히 칸다하르·헬만드 등 남부지역의 파슈튠족들에게 더욱 그렇다.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내세우며, ‘파슈툰 왈리’(여성 천시, 복수 등을 특징으로 하는 파슈툰족의 관습법)를 이용해 호소력 있는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아프간 국회의원 슈크리아 바라크자이). 낮시간 부패한 정부 관리에게 염증을 느낀 아프간인들은 밤에 찾아오는 ‘공포의 손님’들을 자신들의 실질적인 정부로 인정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이 탈레반이 남부지역에서 세를 불리는 큰 배경이란 설명이다.

탈레반의 타깃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들이다. 칸다하르주의 한 관리는 “탈레반은 만성 기아에 굶주리는 청년들에게 매달 200달러의 급여를 주고, 자살 테러에 자원하면 남은 가족들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선전전은 한계도 있다. SIPRI의 팀 폭슬리 객원연구원(영국 국방부 분석관)은 “남부지역에서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으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탈레반은 알라의 뜻을 언급하고 지하드를 얘기하지만 경제 재건의 청사진도, 아프간 통치의 전략적 그림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살 폭탄테러 같은 문제를 두고서는 지도부 내 이견도 불거져 나온다. 폭슬리는 탈레반이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면 파급력이 막대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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