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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법은 그냥 안둔다(경찰과 시민사회:3)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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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준법엔 “부처” 위법엔 “염라대왕”/불법시위때는 곤봉세례/공권력 도전은 용납 안돼/일 폭력조직도 합법활동은 보장
선진국 경찰은 「야누스」의 두얼굴을 가지고 있다. 선량한 시민에게 더없이 온순한 친구로 다가서지만 일단 법의 한계를 넘어서면 가차없이 회초리를 든다. 우리 경찰이 결정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다.
우리 경찰은 선량한 시민에겐 군림하듯하고 강해야 할 때 물렁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직접 와보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치안이 형편없는 것으로 비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각종 시위장면을 TV에서 자주 봅니다. 어떻게 경찰이 시위대에 밀리고 심지어 구타당하거나 장비까지 빼앗길 수 있지요.』 선진국 경찰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경찰의 실상이다.
실제로 우리 경찰은 화염병이 난무하는 난폭한 시위대를 진압할 때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가며 늘 방어적일 때가 많다. 이러한 경찰 태도는 시위대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과잉진압이라는 여론의 화살이 즉각 경찰에 쏠리게 되는 민주화과정의 사회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차라리 맞자」는 발상과 전략은 역대 독재·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명분있는 시위까지도 무참히 다스림으로써 자초한 업보의 성격도 있다.
그러나 경찰이 명백한 위법사실에 대해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를 하고도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원인이야 어디 있든 법치주의사회의 경찰로서 부끄러운 일이며 우리 경찰이 꼭 극복해야 할 핵심과제다. 신사의 대명사로 통하는 영국 경찰이 공권력 자체가 위협받을 때 얼마나 무자비할 정도로 폭력적(?)인가를 보면 법집행의 당당함과 엄정함을 잘 알 수 있다. 영국 경찰간부가 들려준 일화 한 토막. 90년 3월말 런던의 중심지 트라팔가 광장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철의 여인」 대처 총리가 18세 이상 모든 성인 남녀에게 연간 2백78파운드(한화 33만여원)의 인두세를 물리기로 하자 수만여명의 성난 군중들이 격렬한 반대시위를 벌였다. 흥분한 데모대는 돌·병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금세기 영국 최악의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관 60여명을 포함,4백20여명이 부상하고 3백40여명이 체포되는 엄청난 유혈사태였다.
당시 영국의 기마경찰대는 저지선이 위협받자 주저없이 말위에서 곤봉으로 데모대를 무차별 난타했다.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이 잔혹한 장면이 고스란히 TV로 안방에 방영됐다. 우리 같으면 경찰의 진압방법을 놓고 엄청난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을지도 모르지만 영국은 달랐다.
보수지 더 타임스는 물론 진보적인 가디언지 등 모든 권위있는 언론들이 주민세 신설문제는 재고돼야 한다는 입장만을 보였을뿐 불법시위에 대한 대처정부의 강경진압을 지지했다. 물론 진압방법을 놓고 시비는 있었다. 그러나 TV토론 등 여러 논쟁에서 결론은 「시위대가 불법행위를 했고 경찰이 법에 주어진 의무를 수행했기에 당연한 것」이라는 쪽이었다.
경찰은 질서의 마지막 보루이자 공권력의 상징이다. 거기에는 철저한 정치적 중립이 따라야 한다. 싱가포르의 시위 진압담당 경찰특수부대 부대장 오카췌(호가재)씨는 『우리는 부대원들을 절대로 시위대에 밀리지 않도록 훈련시킨다. 어떠한 이유든간에 공권력이 밀리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이는 국가질서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시민들도 당연시
싱가포르·홍콩 경찰에는 「배턴셀」이란 무지막지한 시위진압 장비가 구비돼 있다. 나무 또는 고무로 만든 20∼30㎝ 가량의 짧은 방망이를 땅바닥에 발사,시위대의 정강이를 후려쳐 엄청난 고통을 주는 장비다.
경찰과 공권력 행사에 관한 우리 국민의 인식과 경찰의 대처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한 예로 우리 국민의 잘못된 경찰관은 선진국에서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수가 더러 있다.
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흑인들이 한인 상점을 약탈하는데도 경찰이 폭도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수수방관하자 격앙된 한인들은 경찰서로 몰려가 항의농성을 벌였다.
경철서장이 나와 싹싹 빌 것이란 우리식 예상과는 달리 LA경찰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신고되지 않은 불법시위이므로 당장 흩어지지 않으면 강제해산시키겠다는 방송이 마이크로 흘러나왔다.
더욱 격앙된 시위대가 계속 구호를 외치자 LA경찰은 가차없이 공포탄을 쏘고 무력진압에 나섰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준법은 보호하되 탈법엔 단호히 대처한다는 원칙론이 지켜지는 매정한 미국사회의 단면이었다.
범법자에 대한 제재가 강하기는 싱가포르가 으뜸이다.
휴지 한장 버려도 엄청난 벌금을 매긴다는 것은 너무 유명한 얘기지만 아직도 미개사회에서나 있을법한 볼기를 치는 태형이 존재한다.
태형에 쓰이는 길이 1m 가량의 가죽혁대는 끝에 뾰족한 가시를 촘촘히 박아 만든,보기만 해도 흉측스런 장비다. 한번 맞으면 엉덩이가 해져 피를 흘리는 것은 물론 심하면 뼛속까지 가시가 박히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
이러한 태형이 아직도 싱가포르에는 남아있어 강간·미성년자 추행과 같은 파렴치범은 물론,심지어 상습적인 음주 운전자도 태형에 처할 수 있다.
또 태형에 처해질 때마다 범법자의 얼굴사진이 신문에 게재된다.
쓰레기를 버리다 적발된 경우 2∼3달에 한번씩 이스트코스트공원에 모두 불려가 「나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하루종일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
반면 선진국 경찰은 염라대왕의 얼굴과 부처의 표정을 함께 갖고 있다. 고의성이 없다고 인정될 경우 경찰관들의 융통성있는 태도에 감복했다는 교민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규제대상 미리 통보
홍콩에서 한국무역상사에 근무중인 이상경차장의 체험담.
『가족을 태우고 홍콩 시내를 달리던중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보챈 적이 있었다. 하도 급하기에 주정차 금지지역에 차를 대놓고 아이들이 화장실에 간 사이 교통경찰이 다가와 딱지를 떼려했다 상황을 설명하던중 아이들이 바지춤을 올리며 나타나자 경찰관은 군소리 없이 그냥 보내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면 융통성있고 관대하게 시민들을 대하는 것이 선진국 경찰의 공통점이다. 일본의 경우 법의 테두리안에서 보호를 받는 것은 일반시민은 물론 아이로니컬하게도 폭력조직까지 포함된다. 우리처럼 폭력단체로 인정되는 조직을 만들었다고 해서 처벌할 수 없다.
모든 단체들이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는 헌법상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 경찰은 야쿠자 등 조직폭력단체에 금품 갈취·민사사건 개입 등 규제대상을 미리 통보해주고 어길 경우 몽땅 잡아 넣지만 그밖의 활동은 보장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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