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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구속위주」 수사관행(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과감히 기각키로 한 서울형사지법의 결정은 사법부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다.
실은 서울형사지법의 이러한 결정은 불구속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법규정상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구속의 요건을 ①일정한 주거가 없고 ②증거인멸의 우려 ③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로 분명히 한정해놓고 있다. 다시말해 이 세가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구속해선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법원의 영장심사는 이런 법적 구속요건을 도외시하고 ▲사안의 경중 ▲범죄자에 대한 응징 및 피해회복 ▲수사 및 재판의 편의 등을 고려해 이루어져왔다. 법에 없는 기준이 법에 규정된 기준위에 군림해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법원의 영장발부율은 90%를 넘어왔고,이런 초법적인 구속 남발이 관행화함에 따라 일반 국민들은 구속이 원칙이고 불구속은 예외인 것으로 아는 거꾸로 된 법인식을 지녀왔다. 서울형사지법의 결정은 바로 이에 대한 자성의 표현인 것이다.
12,13일에 있은 서울지하철 4호선 지연운행도 법원이 구속요건을 엄격히 적용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전동차 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가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는 별개로,적어도 구속할 이유까지 있었는지 의문이다. 전동차 차장이 증거를 인멸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고,무죄를 주장하는 형편에 도주할리도 만무하다. 그런데도 경찰·검찰은 영장을 청구했고,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그동안 구속남발과 관련해서는 주로 경찰과 검찰이 사회의 비난을 받아왔으나 실은 그 최종적인 책임은 법원에 있다. 경찰·검찰의 청구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왔기에 구속이 남발되어온 것이다.
뒤늦게나마 서울형사지법이 영장심사를 엄격히 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나 왜 이런 조치가 대법원 차원이 아닌 일개 지법 차원에서나 이뤄지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다른 지방 법원에선 법규정을 무시하고 나쁜 관행에 따라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다는 것인다. 이런 지침은 마땅히 대법원이 전체 지법에 대해 시달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법원의 구속요건 엄격심사는 경찰과 검찰에 부담을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사법제도 개혁위원회가 이미 불구속재판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구속영장 실질심사제와 기소전 보석제도의 도입을 건의하는 등 시대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경찰·검찰도 스스로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세워나가는 도리밖에 없다.
국민도 피의자는 구속되는게 원칙이란 잘못된 인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요 인권인 신체의 자유가 쉽게 제한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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