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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에 발암물질이라니(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낙동강 식수오염사고의 원인조차 채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같은 물에서 발암물질까지 검출된 것은 정부의 상수도 행정에 대한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게 한다. 더군다나 수원지의 원수가 아닌 정수과정을 거친 식수에 비록 미량이라고는 하나 독극물이 함유됐다는 사실은 전체 상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위험한 발암물질을 발견하고도 거의 80시간동안이나 재확인과 상부 보고절차를 이유로 발표를 미룸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건강에 그만큼 위해요인을 가중시킨 결과를 초래한 것은 당국이 일처리의 선후나 완급조차도 판단못한 어리석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검출된 벤젠과 톨루엔은 유기용제로서 유용한 화학물질이긴 하나 인체에 들어가면 우선 뇌속에 침투해 심한 후유증을 남기고,전신에 축적돼 암의 원인물질이 되는 무서운 독극물이다. 때문에 수돗물에 이러한 독극물이 함유됐을 위험성을 발견했다면 복잡한 보고절차를 거치기에 앞서 즉각 국민에게 알려 경계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다. 물론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재확인과 보고절차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그 다음에 서둘러도 될 일이 아닌가.
이러한 독극물이 낙동강의 중류인 대구 근처에서부터 하류에 있는 물금에 이르기까지 각 정수장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낙동강의 모든 수계가 이 물질로 오염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흐르고 있는 강물에서가 아니라 여과와 정화과정을 거친 정수장의 물에서 검출됐다는 사실은 가정의 상수도가 유해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상수도 정수장의 정수장치란 도대체 무엇을 걸러낸단 말인가. 벤젠이나 톨루엔은 휘발성이 강해 물을 끓이면 없어진다고 치더라도 그밖의 검출안된 물질들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은 무슨 수로 달랠 것인가.
낙동강 유역에는 대구 성서공단과 구미공단을 비롯해 수많은 공장과 축산업체가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다. 그 많은 공장중에 벤젠과 톨루엔을 사용하는 업체 또한 수백 혹은 수천에 이를 것이다. 이들 업체를 샅샅이 뒤진다해도 이 독극물을 방류한 업체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단속상의 허점을 악용해 공장들은 무시로 독극물이 함유된 산업폐기물을 무단방류하는 것이다. 그런 다수의 익명성과 비양심이 전국의 산하를 쓰레기장과 시궁창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공해사건이 터질 때마다 「근본적 대책」을 입버릇처럼 반복해왔다. 그러나 모두 「깜짝쇼」에 그쳤을뿐 환경정책은 개발과 성장정책의 뒷전으로 밀렸다. 그 죄업에 대한 응보의 극히 일부분이 상수도의 발암물질로 현재화한 것이다. 정부와 업계·국민 모두가 환경보전에 대한 발상자체를 대전환하지 않으면 이 응보는 더욱 심화·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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