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맞아 한자교실 찾는 어린이 많다-어휘력.윤리교육 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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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 아(我),속일 기(欺),맏 형(兄),아우 제(弟),같을여(如)속일 기(欺),아비 부(父),어미 모(母),내가 형제를속이면 부모를 속임과 같을지니라.』 서울강서구가양동에 자리한 양천향교(훈장 吳男柱.73)의 하루는 아이들의 한자 읽는 소리와 뜻풀이를 겸한 훈장선생님의 훈시로 시작된다.겨울방학을 맞아24평 남짓한 명륜당을 가득 메운 50여명의 국민학생들은 전날배운 한자를 훈독하 고 뜻풀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복습과정을 통과한 어린이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새로 배울 한자를 붓에먹물을 듬뿍 묻혀 습자지에 한획 한획 정성껏 내려쓴다. 방학을 맞은 국민학생들 사이에 한자배우기가 붐을 이루고 있다.한자와 서예를 동시에 가르치는 사설 서예학원은 물론 서당이라 불리는 각종 한자교실이 생겨나고 있으며 10일~1개월의 단기 한자교실을 여는 국민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한자에서 파생된 어휘가 많아 한자를 알면 개념파악등이 빨라 학습효과가 높아진다는 주장.최근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고조등이한자교육에 불을 댕기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對중국 수교등 변화된 국제환경도 어린이 한자 조기교육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동부교육청의 경우 관내 68개 국민학교중 12개교에서 겨울방학 어린이 한자교실을 열고 있다.올해로 여섯번째 한자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묵동 국민학교의 경우 처음에는 40여명에 못미치던 수강생이 올해는 70여명으로 크게 늘 었다.
한자교실을 맡고 있는 康昌錫교사(61)는 『한자를 떠나서는 공부도,생활도 하기 어려운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어릴때부터 한자를 익혀 사물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기 위해 한자교실을 열게됐다』고 밝혔다.
어린이 한자교실은 『四字小學』『千字文』등 알기쉬운 교재를 통해 상용한자를 가르치는 한편 충효사상등 윤리교육도 병행하고 있어 어린이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호응이 높다.
양천향교에서 2년째 한자를 배우고 있다는 崔銀株양(송화국교 5년)은 『한자를 배우기 전에는 신문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몰라 답답할 때가 많았으나 이제는 쉽게 뜻을 이해할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당이나 서예학원을 찾는 어린이들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대개 월3만원의 수강료를 받는 이들 사설학원은 방학을 맞아 학원을 찾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교사를 확보하고 수업반을 늘리는등 발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평소보다 수강인원이 두배정도 늘어났다는게 학원측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이밖에 서울시는 구청별로 10일과정의 무료 어린이 한문교실을개설,6일부터 운영에 들어갔다.올해로 3년째 계속되고 있는 한문교실은 퇴직교사들의 친목모임인 「삼락회」 회원이 중심이 돼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모두 22개소에서 하루 2 시간씩의 한자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한자 조기교육이 붐을 이루면서 국민학교 정규교과 과정에 한자가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교과과정에는 한자를 포함시키는 것이 무리이나 95년부터 시행되는 새 교육과정에는 학교장 재량으로 주1시간씩 정규교과외 기타교육을 할수 있어 이를 한자교육에 이용하는 학교가 많아질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한편 어린이 한자 조기교육 붐에 힘입어 한자서적 판매도 엄청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예림당.혜원출판사.지경사.문공사.봉황.교학사등 어린이 한자서적을 펴내는 출판사만도 40여곳에 이르고 있다.
또한 카셋테이프를 끼워파는『웃으면서 배우는 천자문 서당』,국민학교 국어교과서를 한자를 섞어 재편집한 『국민학교 국어 읽기』,만화로 배우는 『천자문』등 다양한 형태의 책이 나와있다.
〈李貞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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