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증인선서도 못한 안두희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白凡선생 암살범 安斗熙씨(76)가 4일 들것에 실려 국회에 나타났다.선생이 돌아가신 49년6월26일로부터 45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安씨는 중풍과 치매.失語症등 합병증으로 증인선서조차 하지 못했다.대신 부인 金明姬씨(62)가 선서하고 安씨가 증언해놓은 녹음내용을 확인했다.安씨는 부인이 증언하는동안 담요를 덮고 들것에 누워 이따금씩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국회 법사위의「白凡 金九선생 시해진상규명 조사소위원회」(위원장 姜信玉)는 결국 白凡시해진상규명위 국민운동위원장인 金奭鏞씨(54)가 安씨로부터 들은 1백21시간분량의 테이프(『月刊中央』94년1월호 게재)만 증거로 채택했다.安씨의 병 세를 감안해최후의 증언을 듣기위해 이날 회의를 연 것이나 이미 늦어버린 셈이다. 安씨는 암살직후 金昌龍특무대장등의 비호로 무기형을 받고,다시 15년형으로 감형됐으며,6.25와중에 軍에 복귀했다.
예편해서는 軍관련 사업 특혜도 받았다.
그러나 金昌龍씨가 살해된 뒤부터 가족을 이민보내고 본인도 수시로 숙소를 옮기며 숨어살아야 했다.白凡을 흠모하는 추적자들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기도 했다.한평생 도피와 불안속에서 살아온것이다. 이날 증거로 제시된 테이프에 대해 부인 金씨는『예전에는 때려서 말한 것이지만 최근 것은 죽기전에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白凡을 시해한 것보다 더한 죄를 짓게 된다고 남편이 말했다』고 대신 전했다.
방청객 중에는 들것에 실려나온 安씨가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 속임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임종을 앞두고도 동정받지 못하는 그의 초췌한 모습은「역사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줬다.하지만 安씨는 하수 인에 불과하다. 安씨 뒤에서 암살을 사주한 사람들은 한시대를 휘어잡고 살다 갔다.安씨의 증언 테이프에마저 그들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있다.이제 당시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도,수사자료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이런 상태에서 조사소위가 얼마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역사의 심판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그 심판을 위해서는 진실을 찾는 인간의 노력이 앞서야한다.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安씨의 침묵을 보면서「역사의 처분」에 맡기기로 한 다른 많은 사건들도 결국은 규명이 안된채 묻혀버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또다시 때늦은 후회 를 하지말고 진실을 밝히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