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 신년사에 담긴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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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건설 최우선… 남한정부 비난강도는 더 높아져
북한 김일성주석의 신년사는 올해를 혁명적 전환의 해로 규정,경제건설에 역점을 두면서 서방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점이 특징이다. 또 남북대화와 관련,지난 3년동안 우리측에 군축 등을 제의해왔던 것과 정반대로 남한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선 점도 주목된다. 김 주석은 핵문제에 대해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해결을,통일문제는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과 연방제 통일방안을 강조,기존입장을 되풀이했다.
이같은 신년사로 미뤄 북한의 올해 대내외 정책기조는 경제개발을 통한 체제강화와 미일 등 서방과의 외교관계 다변화에 중점을 둘 전망이다. 신년사가 천명한 대내정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경제건설에 우선순위를 둔 점이다.
94년을 혁명적 전환의 해로 규정,전당·전군·전민이 총동원돼야 한다고 한 점은 바로 경제난 타개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주석의 27분의 신년사중 절반가량은 경제부분에 할애됐다. 경제건설 방향은 작년말 당중앙위 21차 전원회의 결정사항인 농업·경공업·무역 제일주의 방침을 재천명,식량난과 열악한 주민생활을 해결하고 대외개방을 가속화할 것을 재확인했다.
김 주석이 무역과 관련,『신용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수출품 생산기지를 튼튼히 꾸리고…』 등 구체적 부분까지 밝힌 점은 흥미있는 대목이다.
정부 관계자는 『신년사의 새 경제노선은 그동안의 중공업 우선주의 정책의 포기를 의미한다』면서 앞으로 북한은 『남포공단 및 나진·선봉지구에 대한 투자 및 외자유치에 큰 힘을 쏟을 것』으로 분석했다. 경제건설과 관련,자력갱생을 강조한 것은 이른바 인민경제의 선행부분인 석탄·전력·금속공업 및 철도수송 확충에도 중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신년사가 『온 사회에 군사를 중시하고 인민군대를 적극 원호하는 기풍을 세워야 한다』 『방위력을 강화하는데 응당한 힘을 넣어야 한다』고 군사문제를 강조한 것도 특징인데 무역제일주의를 통한 개방조류속에서 체제내부에 긴장분위기를 조성,내부결속을 다지고 주민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노선은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체제」 고수라는 지난 3년간의 기조를 유지했으며,권력승계와 관련한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대외정책중 주목되는 부분은 무역제일주의 방침과 아울러 자본주의 국가와의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해 신년사에서 한반도문제와 관련,유관국들의 역할을 강조한데서 한걸음 나아가 서방과의 관계개선이 당면 외교노선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같은 기조로 미뤄 북한은 올해 핵문제를 축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8차 회담으로 중단된 일본과의 수교협상도 곧 재개하면서 동남아 및 이탈리아·독일 등 서구와의 외교관계 다변화에도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신년사는 대남정책에서 『문민정권이 역대 군부정권과 다른 것이 없다』면서 남한정부를 맹비난하고 나서 주목된다.
이같은 발언은 『민족자주적 입장에서 누구와도 과거를 묻지않고 대화하겠다』던 지난해 신년사와는 크게 대비되는 것으로 김영삼대통령의 『남북관계는 올해 획기적 전환이 올 것』이라는 지난해 12월27일 발언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이같은 발언은 그동안 우리측이 특사교환을 북미 3단계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해온데 대한 반응으로 올해 남북대화의 진전이 상당히 불투명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신년사가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 호응을 촉구한 것은 지난달 대남 전문가인 김영주·김병식부주석의 중용과 더불어 당국간 대화보다 비당국간 통일전선전술식 파상공세를 펼 것을 예고해주는지 모른다.
남북경제교류는 당국차원이 아닌 기업 등 비당국간 경협을 북측이 희망해온데다,이것이 10대 강령 7조에도 간접 명기된 점에 미뤄 올해도 임가공무역 등의 범위안에서 활기를 띨 전망이다.<유영구·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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