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정리 제대로 하려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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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방만한 경영과 극도의 비효율로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환부로 지목돼온 공기업의 정리방안이 확정됐다. 24일 밝혀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및 기능조정 방안」을 보면 먼저 대폭적인 정리대상 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두 1백33개의 공기업중 절반이 넘는 70개가 수술대에 오른다. 과거의 공기업 정비작업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숫자다.
이번 공기업정리의 핵심은 국민·외환·중소기업·주택은행과 관광공사를 포함한 10개의 정부투자·출자기관을 민영화한다는데 있다. 석탄공사와 광업진흥공사가 하나로 합쳐지고 무역공사와 토지개발공사의 기능이 크게 바뀌게 된다. 이밖에 52개의 투자기관 자회사들이 출자지분 매각의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정작 경제적 중요성이 크고 공기업의 중심부를 이루는 한전·포철·도로공사·통신공사·조폐공사 등 굵직굵직한 기관들은 이번 정리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이로인해 대폭정리의 의미는 반감된다고 봐야 옳다. 지난 10월초 정부가 공기업 대수술을 외치고 나섰을때의 개혁의지도 상당히 수그러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민영화 대상기업의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영화의 실질적 내용이다. 우리는 이미 80년의 시중은행 민영화와 87년의 한전·포철·외환은행·국민은행 등의 민영화추진이 시늉만으로 끝난 전례를 갖고 있다. 민유화와 민영화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껍데기만의 공기업 정리가 지금까지 여러차례 반복돼온 것이다.
이번의 공기업 개혁은 신경제계획이 표방하는 경제개혁 실천의 참모습을 판단하는데 있어 하나의 잣대가 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부 직접통제하에 있는 공공부문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민간부분의 경제개혁을 호소해봤자 설득력이 있을리 없다.
민영화대상에서 제외된 공기업에 대해서도 최소한 정부쪽에서 경영효율화를 방해하는 일은 없애야 한다. 경영능력도,정문성도 없는 사람을 공기업의 임원으로 밀어넣는 낙하산식 인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의 공기업 비효율성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상당부분 져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정리방안에서 정부는 민영화되지 않는 공기업에 대해 특별경영진단을 통해 경영을 합리화시킨다는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작업도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공기업이 누리는 독과점적 지위와 주인없는 기업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 굳어져온 고비용과 낮은 생산성의 경영규모를 혁파하려면 때로는 엄청난 마찰과 진통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공기업 개혁의 실천방안은 공기업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경영쇄신 노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외부의 강요에 앞서 내부의 개혁의식을 고취시키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검토해보는 것이 정부가 맨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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