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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비 → '동건서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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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충북 제천 지방에는 8월 들어 13일까지 모두 507.5㎜의 비가 쏟아졌다. 반면 비슷한 위도지만 백두대간 반대편 동해안의 경북 울진에는 같은 기간 내린 비가 21.4㎜에 불과했다. 울진도 이 기간 중 이틀을 제외하고는 매일 비가 왔지만 가장 많이 내린 날(8일)이 7.5㎜였다.

강원도 향로봉에서 남쪽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동.서 지방의 강수량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 남서쪽과 남쪽에서 몰려온 습한 공기가 백두대간에 부딪치면서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측정하는 전국 75개 기상 측정지점의 8월 1~13일 강수량을 보면 제천뿐만 아니라 백두대간 서쪽의 강원 영월.춘천.홍천.인제에는 250㎜ 넘는 비가 내렸다. 백두대간 동쪽의 포항.영덕.울산의 강수량은 50㎜가 채 안 됐다. 호남 지역에 비해 대구와 경북 내륙지방의 강수량은 적은 편이었다.

8월 들어 이어지는 이번 게릴라성 호우는 남쪽 북태평양 고기압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북쪽의 차가운 저기압이 만나면서 비구름이 만들어진 게 근본 원인이다. 여기에 남서쪽에서 수증기가 지속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장마처럼 비가 계속 내리는 것이다. 기상청 김승배 통보관은 "남서쪽에서 계속 들어온 따뜻한 공기가 산이라는 장애물을 만나면 (상승기류가 만들어져) 산을 타고 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비구름이 많이 만들어지고 비도 많이 내린다"고 설명했다.

경남 거창.산청.진주에 300㎜ 이상의 호우가 발생한 것도 같은 원리다. 이 지역에 많은 비를 뿌린 시기는 남쪽에서 곧바로 수증기가 들어온 시기와 일치한다. 백두대간 끝 부분인 지리산.덕유산에 비구름이 걸리면서 진주에는 7일 하루 200㎜ 넘는 비가 내렸다.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가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도 백두대간이 강수량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당시 루사는 백두대간 동쪽 부분과 마주치면서 강릉 지역에 하루 870.5㎜의 폭우를 퍼부었다.

김 통보관은 "지형 조건이 강수량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기상청은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가로 세로 5㎞ 간격의 집중호우 수치 예보 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백두대간(白頭大幹)=백두산에서 시작해 설악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덕유산을 거쳐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진 산줄기를 말한다. 전체 길이는 1400㎞에 이른다. 현재 답사가 가능한 남한의 지리산~향로봉 구간의 거리는 67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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