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맨' 칼 로브 백악관 퇴임하던 날 '에어포스 원' 으로 모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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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 대통령(左)이 13일 사임을 발표한 백악관 정치고문 칼 로브와 함께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앤드루스 공군 기지 AFP=연합뉴스]

"우리는 오랜 친구였고 다정한 벗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자신의 오른팔이자 두뇌였던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을 떠나보내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13일(현지시간) 백악관 남쪽 뜰에서 열린 로브의 사임 발표 기자회견에서다. 부시는 "로브는 떠나지만 나는 좀 더 여기 남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와 긴 포옹을 나눴다. 2000년과 2004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로브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났다.

로브는 "역사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데 감사한다. 평생의 기쁨이자 영예였다"고 화답했다. 그는 이어 "이달 말로 (퇴임할) 때가 됐다"며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보통 미국민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견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부시 대통령의 별장이 있는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으로 가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올랐다. 로브와 그의 가족은 이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 로브에게 큰 빚을 진 부시로서는 그를 극진하게 대접함으로써 여전히 총애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부시 대통령이 로브를 물러나게 했는지, 아니면 로브가 스스로 떠나기로 결정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마침내 로브가 퇴진함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일단 정치적 부담을 덜게 됐다. 하지만 가장 믿고 의지했던 '설계사(로브의 별명)'마저 퇴장함에 따라 부시의 레임덕은 가속화하고 인물난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로브는 2008년 대선에는 참여하지 않고 회고록 집필에 몰두할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를 떠난 측근으로는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존 볼턴 전 유엔대사, 댄 바틀릿 공보고문, 랍 포트먼 예산실장, 해리엇 마이어스 법률고문 등이 꼽힌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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