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93년>2.권력구조 변동-김정일 주석승계 멀지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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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의 정치를 가늠케하는 권력구조는 올 한해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金正日은 4월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권력 승계를 더욱 공고화했으며,작년말 중용된 對南.경제.외교분야의 테크너크랫이 퇴조하고 조직.사상通및 군부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는 올해로 끝난 제3차 7개년 경제계획및 교착상태에 빠진 핵문제에 대한 북한 수뇌부의 평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金日成의 동생 金英柱가 18년만에 권력일선에 복귀한 것도 향후 권력승계 구도및 對南정책 변화 가능성과 관련,관심을 끌었다. 먼저 金正日의 권력승계는 실질적인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는게 대체적 시각이다.
91년 12월 軍최고사령관,92년 4월 원수로 추대됐던 金은올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회의에서 국방위원장에 올랐다. 국방위원장은 인민무력부 산하의 정규군을 비롯,노농적위대.교도대.붉은청년근위대에 대한 지휘.통솔권을 가진 軍관계 권력의 정점으로,작년 4월의 개정헌법에 의해 주석과 마찬가지로 최고인민회의 앞에서만 책임을 지도록 돼있다.
金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함으로써 金日成이 갖고있는 국가주석과 黨총비서직을 이어받으면 권력승계는 완료된다.
권력승계와 관련,金正日에 대한 우상화작업이 전례없이 강화된 것도 주목거리다.
1월의 3대혁명小組 발기 20주년행사,2월의 社勞靑 제8차대회,7월의 戰勝(휴전) 40주년 행사등은 金正日의 우상화작업에동원된 대표적 행사들이었다.
북한방송이 金日成을 지칭하던「어버이」「수령」등의 호칭을 金正日에게도 사용함으로써 우상화작업은 극에 달했다.
이같은 분위기로 미뤄 최근의 노동당 전원회의및 최고인민회의에서 金이 黨총비서나 국가주석직을 이양받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일단은 후계자 결정 20년을 맞는 내년초로 미뤄졌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과거 후계다툼을 벌였던 金英柱를 권력에 복귀시킨 것은 친족 내부의 결속을 다지겠다는 포석이지 권력승계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풀이다.
아울러 계모 金聖愛가 女盟 전원회의에 모습을 나타내 金을 추켜세운 것이나 이복동생 金平 一 불가리아대사를 국내로 불러들인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金日成이 개방파를 비롯한 金正日의 측근을 문책인사하면서도『金正日동지는 비범한 영도력으로 혁명과 건설을 현명하게 영도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그의 후계체제가 공고함을 시사하는 대목으로볼수 있다.
올 한해는 전반적으로 테크너크랫의 퇴조가 두드러져 金容淳.金達玄.金渙.朴南基.洪成南등 작년 12월 인사에서 각광을 받았던對南.경제담당자들이 강등.문책되는등 된서리를 맞았다.
金容淳은 작년 정치국후보위원에 보선된뒤 국제비서에서 對南비서로 자리를 옮겼으나 1년만에 정치국후보위원에서 탈락,권력서열도15위에서 26위로 밀렸다.
金의 강등은 남북관계에서 별다른 실적을 거두지못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나 당비서와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직은 유지한 만큼 對南쪽을 계속 맡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을 것 같다.
작년말 국제비서로 전보된뒤 올 4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을맡았던 崔泰福이 8개월만에 외교위원장에서 해임된 것도 金의 강등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미국과의 막후 교섭창구인 金永南부총리겸 외교부장이 직책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협상의 일관성을 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金達玄은 작년 정치국후보위원에 보선된뒤 정무원 부총리겸국가계획위원장을 맡았으나 역시 1년만에 권력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의 지배인이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金의 문책은 제3차 7개년계획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확실하다는 분석이나 그동안 그가 對南 經協창구를 맡았던 까닭으로 남한측 對北 경협 희망업체의 혼선이 불가피하게 됐다.경제담당비서겸 최고인민회의 예산위원장을 맡았던 朴南基 도 경제일선에서 물러나 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에 보임됐다.
朴은 金達玄과 함께 경제계획을 관장해온데 따라 문책된 것으로보인다. 이밖에 작년말 부총리에서 부총리겸 화학공업부장에 기용된 金渙과 洪成南부총리도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관측됐다.
민족통일연구원 許文寧박사는『올해 중반 부총리겸 경공업위원장인金福信(여)이 해임됐을 당시부터 경제팀에 대한 문책및 물갈이 인사는 예고됐었다』고 말했다.
대남.외교및 경제부분은 12월 인사에서 중용된 金英柱.金炳植부주석.黃長燁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과 韓成龍당비서및 최고인민회의 예산위원장.洪錫亨국가계획위원장등이 관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기용은 일단 개방화의 대세에 맞서 체제유지를 위한 조직강화등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며,이는 당조직및 주체이론에 밝은 金英柱와 黃長燁.楊亨燮을 중용한데서 잘 드러난다.
군부의 약진도 주목을 받았던 부문으로 12월 黨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및 후보위원에 새로 보선된 17명중 9명을 군부인사가 차지했다.이는 올 7월 장성급 99명의 승진인사와 함께군에 대한 金正日의 위상을 굳히는 조치로 보인다 .
작년에 黨중앙위원및 후보위원에 보임된 군부인사는 전체 18명중 3명에 불과했었다.
체제유지를 위해 부주석을 4명으로 늘리는등 조직개편도 많았는데 특히 공안기구의 격상이 특징이었다.
11월에는 정무원 직속의 국가검열위원회(위원장 全文燮)를 중앙인민위 산하로 편입시켜 위상을 강화했고 국가보위부도 金正日이올 4월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중앙인민위 산하에서 국방위원회로 편입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吳榮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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