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는 북 개방파 퇴조/오영환 통일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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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핵문제 해결의 막바지 고비에서 열려 관심을 끌었던 최고인민회의 제9기 6차 회의는 김정일의 권력승계나 중대정책 변화 결정 없이 11일 막을 내렸다.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의 권력 일선 복귀와 경제계획 실패 자인이 얼추 가장 큰 뉴스였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나타난 김달현의 실각,김용순의 정치국 후보위원 탈락,박남기의 경제비서 해임 등 개방파 테크너크랫의 퇴조는 향후 북한의 정책 가닥과 관련해 눈여겨 보아야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91년 소련·동구의 붕괴와 8차례에 걸친 남북 고위급회담 등 남북관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북한 경제·외교의 개방파 실세들이었다.
이들은 강등·문책배경이 경제정책 및 핵외교 실패 때문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대신 권부의 핵으로 진입한 김영주,황장엽,양형섭 등의 면면이 조직과 이념에 밝은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김은 62년부터 10년간 당조직 지도부장을 맡은 북한 권부의 버팀목이었고,황·양은 이른바 주체이론을 정립한 사상의 양대 기둥이었다.
더구나 당중앙위 위원·후보위원에 새로 보선된 17명중 절반을 넘는 9명이 현역 군인으로 군부의 진출도 두드러졌다.
오진우,이종옥 등 혁명 1세들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요컨대 북한이 무역 제일주의를 내세운 개방정책 천명에도 불구,이번 인사는 흡사 과거의 남북 대결시대 권력엘리트 구조로 되돌아가는 듯한 양상이다. 물론 북한정권의 속성상 권부를 온건파와 강경파,테크너크랫과 이데올로그로 일도양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북한의 권력엘리트 재충원이 테크너크랫보다 조직·이념통 및 군부인사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이같은 인사구조는 앞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이나 경협에 경직성을 초래할 가능성도 점치게 한다.
이같은 북한의 권력엘리트 변화이면에 핵­경협 연계 등 경직된 정책으로 북한을 벼랑으로 몰아간 정부의 근시안적 대북정책이 영향을 주지 않았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북한내 테크너크랫의 입지를 살려 북한의 개방을 더 가속화시키는 방안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혹자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오십보 백보론」를 펴겠지만 무릇 역사는 사람의 정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고,국경이 허물어져가는 세계사적 변혁기에 조직·사상으로 무장된 파워엘리트가 북한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경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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