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동물검역소,수입 동물.축산물 한눈에 척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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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올림픽역사상 가장 성공작이라고 평가받는 88서울대회가 말(馬)때문에 자칫「귀떨어진 올림픽」이 될 뻔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극성스런 동물애호운동으로 유명한 英國등 몇몇나라 승마선수.관계자들이 자신들의 愛馬가 한국에서 병에 걸릴 우려가 있다며 승마경기만「미더운 나라」로 옮겨 치르자고 우겨댄 것.
우리나라에 별난 풍토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검역능력 부족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갖 질병이나 세균을 보유한 말들이 출전하면 자신들의 말이 감염될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당시 국제승마연맹 회장이던 영국의 필립公을 비롯한 많은 승마관계자.검역전문가들이 수차례 방한,우리의 검역능력을 체크하는등법석을 떤 끝에 그같은 의심이 풀리면서 올림픽은 온전히 치러질수 있었다.
부수적으로 우리의 검역능력이 국제적 공신력을 얻는 전화위복의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를 드나드는 모든 동물.축산물에 대한 검역을 전담하는국립동물검역소의 애환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日帝가 맛 좋고 일 잘하는 韓牛를 빼앗아가기 위해 1909년부산에 설치한 輸出牛검역소를 효시로 발전해온 동물검역소는 현재서울.부산.인천.군산.제주등 5개지소를 두고 있다.
직원은 모두 1백69명.그중 행정직과 기능직을 뺀 1백2명이수의학이나 보건학을 전공한 검역관들이다.
대부분 동물의 울음소리.걸음걸이.눈빛.털빛깔만으로도 질병유무는 물론 피로도.허기등「고민거리」까지 척척 알아낸다는 베테랑이지만 밀려드는 일감에 항상 허덕이고 있는 실정.
올들어 지난달말까지의 수입량은 소.말.사슴.조류등 개체별 전부검사를 실시하는 동물 40만7천8백38마리,샘플검사를 하는 꿀벌 3만7천6백51통(통당 약1만마리),축산물 64만3천2백95t. 검역관 1인당 하루평균 동물 13마리,벌 1.2통,축산물 20.8t씩을 검역한 셈이다.
그러나 소 마리당 결핵.백혈병등 최소 아홉가지 질병유무를 가려야 하고 의심이 가면 혈액등 2차 정밀검사를 벌이기 때문에 업무량은 훨씬 많다.
金榮武검역과장(54)은『교역국과 품종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질병의 유입이 우려돼 이에대한 연구.조사까지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검역관들이 병원에서「검역」을 받아야 할 정도로 녹초가 되기 일쑤』라고 말했다.
***○…… 업무밀려 녹초일쑤 ……○ 어패류.파충류.양서류를빼놓고 소.말.돼지.닭등에서부터 치즈.포장육.곱창.족발.녹용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동물과 축산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검역은 크게 육안검사와 정밀검사로 나뉜다.
결핵(소.사슴.산양등),전염성 빈혈(말),오제스키병(돼지),뉴캐슬병(닭)등 35가지 법정질병 여부와 페니실린등 항생물질(17종),설파메다진등 합성항균제(18종),제라놀등 호르몬제(5종)를 비롯해 인체에 해로운 40여가지 잔류물질의 기준치 초과여부를 가려낸다.
한마디로 종합건강진단과 도핑테스트를 합쳐놓은 것과 비슷하다.
검역절차는 동물의 경우 도착 즉시 배.비행기 안에서 육안으로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상대국의 검역증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 검역증이 없거나 있더라도 검역기준에 저촉되는 사항이 있으면 하역 자체가 금지되고 상대국으로「추방」된다.
지난해부터 수입이 자유화된 사슴을 예로 들면 검역증에는 수출전 상대국에서의 검역통과 여부는 물론 그 사슴이 살았던 농장을중심으로 반경 20㎞이내에서 최근 5년동안 人.獸 공통 전염병인 결핵등 다섯가지 전염병과 최근 2년동안 광견 병등 26가지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았음이 명시돼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하역이 허용되지만 일종의 보세구역인 계류장에 갇혀 있으면서 훨씬 까다로운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혈액.분비물등을 채취,각종 임상실험을 거치는데 3~15일정도걸리는게 보통.그러나 근래 동물.축산물의 수출입이 늘어나면서 1개월이상 걸리기도 한다.
다만 원숭이등 서커스단의 묘기동물.맹인의 길잡이 개등은 우선검역으로 공연이나 보행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된다.
정밀검사에서 합격판정을 받아야 비로소「입국」이 허용되고 불합격된 동물.축산물은 즉각 불에 태우거나 땅에 파묻는다.
지난달까지의 불합격현황은 동물 4백66마리,벌 1천8백21통,축산물 5백74t으로 92년 한햇동안보다 무려 10배이상 증가했다. 이는 수입량의 증가도 한 원인이지만 1백만분의1,즉 쇠고기 1천㎏에 단 1g의 유해물질이 들어있더라도 감지해내는 가스크로마토그라프/질량분석기(GC/MS)를 비롯한 첨단장비를 들여오는등 검역기능이 한층 강화됐기 때문이다.
***○…… 동물들 말썽다반사 ……○ 말못하는 동물을 상대로한 업무인 만큼 말못할 에피소드도 가지가지.
동물들이 검역도중 또는 계류장 대기중 갑자기 검역관을 공격하거나「오물」을 튀기는등 말썽을 일으키는 일은 다반사다.
지난해7월 서울지소 검역관 3명이 사슴을 묶어놓고 혈액을 채취한뒤 결핵진단액을 접종하려다 성난 사슴뿔에 받혀 부상했는가 하면 소 수입이 한창이었던 83년말에는 서울지소 임시계류장에 대기중이던 소 3백여마리가 벽을 허물고 뛰쳐나가 민가를 덮치는등 횡포를 부리는 바람에 경찰이 동원돼「체포」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개.고양이등 애완용 동물을 데려오는 외국인중에는 검역기간중 자신의「분신」과 떨어질 수 없다며 계류장에서 함께 지내는경우도 있다.
뿐만아니라 일부 교포중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기도 못먹고 사는 줄 알고 갈비등 검역미필 고기류를 들여오다 검역관이 폐기나 반송을 요구하면『모처럼의 고국방문인데 해도 너무한다』며 승강이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15년째 검역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李錤옥씨(40)는『우리 검역관들은 4천3백만 국민들의 보건전선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鄭泰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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