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조원 증시의 새 과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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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식시장이 마침내 1백조원시대를 맞이했다. 지난 9일자로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이 1백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종합주가지수도 착실한 오름세를 보이면서 최근 3년간의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경기회복에 대한 비관론이 우세한 상황속에서 금융실명제의 엄청난 충격을 일찌감치 벗어나 증시가 활황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주식시장 1백조원 돌파는 우리 경제가 몹시 필요로 하는 증시발전의 한 이정표로 삼을만 하다. 은행 중심의 간접금융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기업자금조달 패턴이 기업경영과 산업 체질개선의 걸림돌이 돼온 만큼 보다 활발하고 원활한 직접금융을 보장할 증시기능의 확충은 빠를수록 좋다. 경제규모에 비해 우리 증시규모는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기업들의 다급한 증자와 공개수요조차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시 1백조원시대의 진입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활황장세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불안요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지난 석달동안 종합주가지수를 1백포인트 이상 밀어올린 요인들의 실체가 문제가.
주로 금융실명제와 금리자유화조치의 충격완화 목적으로 풀린 돈이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주식으로 몰린 결과가 증시의 활황이다. 시중자금의 여유가 산업활동을 활기차게 만들고,그것이 실물경제 호전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겨 주가를 끌어올린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최근의 주식시황을 두고 거품의 기미가 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실물경제 회복과는 별 상관없이 증시가 지나치게 장기간 달아오를 때는 일단 경계심을 가지고 주시할 필요가 있다. 거품이 빠진후 빈사상태에 빠진 증시를 되살리느라 지난 4년간 무리를 거듭하며 쏟아부었던 막대한 자금이 지금까지도 우리 경제의 큰부담으로 남아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경제분야 업적으로 내세울 것이 궁한 판에 증시활기를 경기호전의 유력한 신호인양 과시하고 싶은 동기에서,또는 증시부양대책의 무거운 짐을 떠맡았던 투신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딱한 처지를 배려한 나머지 혹시라도 통화운용에 있어 주가부양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주가총액 1백조원 돌입을 계기로 우리나라 증시발전의 새 장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양적 성장에 걸맞는 질적 성숙이 뒤따라야 한다. 뜬소문과 어설픔 감에 의존하던 투자판단은 실물결제와 기업별·업종별 동향에 근거한 합리적 사고로 바뀌어야 한다. 증시와 관련된 제반 정책들도 주가관리 일변도로 기울었던 종래의 정책기조에서 벗어나 규모확장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구조적 견실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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