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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 호기 왜 못살리나/상품차별화 못해 수출한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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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가격·질 어정쩡… 경공업 개도국에 밀려/일 포기 중급기술도입 돌파구 찾아야
『엔고의 효과를 누릴만도 한데 선진국시장에서 팔만한 한국상품이 없습니다.』 요즘 만나는 종합상사 직원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주)쌍용의 홍승재이사는 『얼마전 미국 출장을 갔다가 달라진 미국시장의 모습에 정말 놀랐다』고 털어놓는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중급이하 시장에서 한국산이 주름을 잡고 있었으나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고 중국·태국·말레이시아 등 후발개도국 상품들이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80년대 후반의 엔고때는 일본 상품의 틈새를 한국 등 몇몇 신흥개도국 제품들이 파고 들었으나 이제는 중국 등 후발개도국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물론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품질 및 가격면에서 어정쩡한 때문이다. 홍 이사는 『큰 기술력의 뒷받침없이 싼 제품을 대량생산해손쉽게 수출해온 우리의 물량위주 수출방식이 한계에 이르러 신엔고의 호기에도 수출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올들어 일본 엔화는 지난해말에 비해 20%정도 값이 뛰어 우리 수출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 되고 있으나 정작 수출은 9월까지 전년동기대비 6.4% 늘어나는데 그쳐 목표인 9%를 밑돌고 있다.
특히 이 기간중 대 일본 수출은 1.6%,대 서유럽 수출은 2.8%씩 줄어 엔고가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 1월에서 8월사이 중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경쟁국들이 엔고에 힘입어 대일본 수출을 17∼19%씩 늘린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주)대우 기획실의 민병관부장은 『자동차·반도체·조선·철강 등 일부 품목은 엔고의 덕을 보고있으나 경공업제품은 개도국의 잠식으로 맥을 못추고 있고 기계류 등은 부품의 일본의존도가 높아 오히려 원가 상승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엔고속에서도 우리나라의 경공업제품 수출은 올들어 9월까지 전년보다 2.2% 뒷걸음을 치고 있다.
민 부장은 『너무 쉽사리 경공업을 포기하고 공장들을 해외로 이전시켜 경공업제품을 수출할 곳이 있어도 생산해줄 업체를 못찾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는 섬유·신발 등 경공업도 국내투자를 더해 고부가가치제품을 개발,승부를 걸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럭키금성경제연구소 이근태연구원은 『일본기업들이 80년대후반이후 해외진출을 크게 늘려 일본 해외공장의 수출액이 일본 총제조업수출의 77%나 되는 상황도 엔고효과를 상쇄시키는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이에따라 우리 상품들은 엔고의 영향을 덜받는 일본 해외공장 제품들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게 돼 엔고의 단맛을 제대로 못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또 80년대후반의 엔고때는 원화가 세계 주요통화에 대해 모두 약세여서 수출에 큰 힘이 됐으나 지금은 엔화만 강세일 뿐 마르크화·프랑화·대만화 등에 대해 오히려 원화값이 비싸져 수출신장에 도움이 못되고 있다고 풀이한다.
우리 기없의 해외판매망에도 문제가 있다.
효성물산의 경우 엔고로 일본 경기가 침체되면서 이 회사의 거래선이었던 일본 유통업체(도매업체)의 상당수가 주저앉아 거래선을 잃은 탓으로 올들어 엔고속에서도 대일 수출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본내 실수요자(제조업체)를 직접 개발해 거래하지 않은 때문이어서 회사측은 시장개척팀을 일본에 파견해 실수요자들과의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물산 박철원전무는 『일본이 엔고로 인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중급기술업종 공장들을 한국으로 유치,기술을 이전받아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현 상태에서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정부는 실질적인 규제완화를 하는 등 투자와 수출의욕을 되살릴 시책을 내놓아야하며 업계는 기술력제고에 전력을 쏟아야 할 때』라고 제시한다.<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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