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산악회,이래도 되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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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산악회가 사적지인 동구릉에서 취사를 하고 음주·춤판을 벌인 사실이 밝혀져 말썽이 되고있다. 구리시지부 회원들이 주말도 아닌 평일에 「신한국결의대회」를 한다면서 능앞 잔디밭에서 가스통과 솥을 걸어놓고 푸짐하게 고깃국을 끓이고 밴드까지 동원해 술을 마시며 걸판지게 춤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동구릉은 유서깊은 사적지이면서 교육장이요 휴식처로 취사·고성방가·음주 등이 일절 금지돼 있는 곳이다. 단속을 책임지고 있는 괸리자들은 무엇을 했는지도 의문이고,단속을 못하도록 위세를 부렸다면 그것도 그들이 그날 플래카드에 적어 내걸었다는 「개혁과 변화,그리고 전진」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민주산악회는 암울했던 군사통치시절 김영삼 당시 야당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민주회복 투쟁을 해온 어둠속의 한줄기 빛과 같은 조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YS를 오늘날의 대통령으로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우리가 다아는 바다.
그처럼 숭고한 이상으로 뭉쳤던 사람들이 대낮에 규정을 어겨가며 사적지에서 시정잡배들처럼 난장판을 벌였다는 것은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오죽했으면 시민들이 관리소에 항의하고 소풍온 학생들이 발길을 돌렸겠는가.
조직이나,사람이나 몹시 힘들고 자랑스러운 일을 해낸뒤 우월감을 느낄수도 있고,보상이나 상대적인 특권 같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심정은 있을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고 지탄을 받게된다. 우리는 그동안 민주산악회가 여권 내부에서 바로 그같은 문제로 주도권 다툼의 양상까지 빚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여권내부의 문제로 우리가 상관할바 아닐지라도 그 우월감이 울타리밖으로 삐져나온다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동구릉사건도 바로 그같은 우월감 내지 특권의식의 부작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민주산악회의 노고에 대한 보상은 김영삼대통령의 당선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산악회도 그것을 더 할 수 없는 보상으로 알고 만족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 대통령이 당선직후 민주산악회의 해체를 지시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 단체가 아직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고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은 한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밀어올린 긍지를 가슴에 안고 묵묵히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해야 한다. 그게 개혁에의 동참이다. 동구릉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월계수회의 폐해를 떠올린다는 사실을 민주산악회 관계자들은 깊이 유의해야 할 것이다. 특권의식이 기생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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