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감사에 치중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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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4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가 국회의 활성화와 정치권의 신뢰회복에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정부의 개혁드라이브에 눌려 국회와 정치의 위축·실종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이번 국정감사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여야의원들이 올해 국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연구와 준비를 해왔다니 기대되는 바 크다.
이번 국감을 문민시대의 첫 국감일 뿐 아니라 정권교체기를 포함한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동요가 심했던 기간의 국정을 국회차원에서 처음으로 총점검한다는 의미가 있다. 작년엔 대통령선거로,재작년엔 총선거를 앞둔 임기말의 국회사정으로 국정감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회로서는 상당기간 국회의 검증없이 넘겨온 각종 정책·행정에 대해 방향은 옳았는지,그 추진은 정상적 수준이었는지 등을 1차로 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김영삼정부 출범이후의 각종 개혁과 사정작업에 대해서도 실제 추진상황을 파악·점검하고 국회 나름의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이다.
지난 몇년간 우리나라는 국가 경쟁력이 급속이 떨어지고 각종 정책의 유효성은 현저히 약화되는 현상을 보여왔다. 국감은 이런 우려할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올바른 대책수립에 기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자면 과거 국감이 보인 각종 폐단이 되풀이돼서는 안될 것이다. 가령 지난날 여야는 국감에서까지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여당은 정부측을 비호하기에 급급하고,야당은 정부 흠집내기에만 열중하는 자세를 보여왔다. 또 다수 의원들이 소영웅주의 경향을 보여 뭔가로 이름을 날려보자는 한건주의에 몰두하고,불필요하게 행정부측을 호령·질타하는 권위주의적 작태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국정감사를 제대로 하고 떨어진 정치권의 신뢰를 만회하자면 이런 구태가 재연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감기간중에는 행정부가 일을 못한다고 아우성이 나오고,제대로 검토도 못할 자료를 산더미처럼 요구하는 일도 이제는 억제돼야 겠다. 국정감사는 수사나 감사원의 감사와는 다르다. 비리나 낭비를 적발,폭로하는 것도 통쾌하겠지만 그보다는 정책의 타당성,예산배정·집행의 적적성 등을 점검하는 정책감사가 주내용이 돼야 할 것이다. 감사대상 선정도 과욕을 부려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감사하기 보다는 중요기관을 깊이있게 감사하는 중점주의가 더 효과적이다. 국회는 20일동안 3백55개 기관을 감사한다는 일정을 잡고 있으나 실제 국감을 진행하면서 신축성 있게 대처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과거청산 문제와 관련해 여야간에는 아직도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 문제 역시 양쪽의 현실적 자세가 요구된다. 증인문제에 관한 입씨름으로 정작 감사 자체를 표류시켜서는 안될 일이다. 한단계 성숙되고 세련된 국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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