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부의원 끈질긴 「구명작전」성공/민자,의원 징계대상자 확정 안팎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느긋하게 있다 경고먹자 “사기다”/아들 보내 “억울하다” 선처호소도
민자당의 재산공개 물의의원에 대한 징계가 진통을 거듭한 끝에 16일 김영삼대통령과 김종필대표의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매듭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 이르는 동안 민자당 지도부가 보여준 무원칙성과 진중치 못한 태도,그에 따른 지도부 성토·불만 및 갈등표출 등 잡음 때문에 『개혁이미지를 오히려 실추시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민자당은 재산공개 물의의원에 대한 징계를 둘러싸고 16일 아침까지 진통을 거듭.
황명수 사무총장과 권해옥 제1·조부영 제1부총장,백남치 기조실장 등 징계팀은 15일 징계 대상의원과 당무위원 등의 반발이 있자 15일 오후 회의에서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없애고 실질적인 징계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축소원칙에 뜻을 같이하고 이같은 안을 김덕용 정무1장관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
○팩시통해 해명
그러나 황명수 사무총장은 16일 아침 청와대 관계자와 최종 접촉을 통해 대통령의 뜻을 전달받은 뒤 당사로 돌아와 『당원권 정지도 한명 있으며,경고는 비공개로 할 생각』이라며 원점선회. 황 총장은 또 발표시점도 『주례회동이후』로 한번 더 미루기로 했다.
한편 자진탈당을 거부하며 당과의 접촉을 회피하고 있는 이학원의원은 15일까지 해명서를 팩시밀리를 통해 당직자들에게 계속 보내는가 하면 16일 새벽에는 보좌관인 아들을 백남치 기조실장의 집으로 보내 『억울하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끈질긴 구명작전을 폈다. 백 실장은 그러나 『상황을 잘 모르고 그러지 말라. 지금 이런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자진탈당」을 권유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징계과정에서 소명과 항의 등을 적극적으로 한 결과 가벼운 징계를 받았거나 아예 징계에서 빠진 의원들도 있다.
영종도 땅 투기혐의를 받아 정치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당원권 정지대상에 올랐던 조진형의원(인천 북갑)은 고위당직자들과 징계작업을 맡은 당직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어떤 징계든 불복하겠다』며 적극 해명·항의한 끝에 정권은 물론 경고대상에서도 빠져 가장 성공한 케이스.
그는 해명을 통해 『인천의 자연·생산녹지에 건축허가를 얻어 축사를 짓고 17년동안 7천여마리의 돼지를 기르는 등 종돈 개량사업에 많은 공헌을 했으며 영종도 땅은 신공항 이야기가 나오기전에 매입해 공유수면을 매립,바다를 육지로 만들었는데 투기 운운한다면 억울하다』고 주장.
○탈당위협 성과
공직을 이용해 축재한 혐의를 받았던 정호용의원(대구 서갑)도 당초 조 의원 등과 함께 당원권 정지대상에 올랐으나 본인의 탈당 협박과 김용태의원 등 TK(대구·경북)의원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경고라는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
정 의원은 14일 김 의원에게 황명수총장과 백남치 기조실장을 만나 선처를 부탁하도록 한데 이어 자신은 15일 김종필대표를 직접 대면한 결과 성과를 거뒀다.
정 의원은 구명운동 과정에서 특히 대구 동을 보궐선거 패배를 상기시키면서 TK출신인 박종철 검찰총장과 박노영 청와대 치안비서관의 경질 등에 따른 「대구정서」를 강조,당지도부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번 재산공개때부터 서울 강남지역에 대한 부동산 투기혐의를 받았던 이명박의원(전국구)도 문제의 서초동땅을 투기붐이 일기전인 17년 전에 산데다 그것도 회사가 사준 점이 정상참작돼 경고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밖에 한때 공개대상자로 분류됐던 부산의 재력가 김진재의원(부산 금정)의 경우 지난번 재산공개와 비교해 물건이 전혀 빠지지 않았고 투기혐의도 없음을 당이 이해해 문제삼지 않았다.
한편 조 의원과 함께 당원권 정지대상에 올랐던 김동권의원(경북 의성)은 조 의원이 적극 해명·항의로 처벌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보고 16일 오전 뒤늦게 김 대표·황 총장을 찾아가 하소연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김 의원은 이날 『평생 공직 한번 가져본적 없이 제조업체만 종사해왔는데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벌이라니 납득할 수 없다』면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징계는 하나도 없으므로 일단 당기기 등 당기구를 통해 이의를 제기한뒤 그 다음의 행보를 생각해 보겠다』고 강경한 태도.
○…도마위에 올랐던 의원들이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살아난 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걸로 안심한 몇몇 의원들은 거꾸로 징계를 당해 희비가 교차하기도 했다.
1차공개때 재산누락 혐의를 받았으나 14일 황 총장이 징계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밝힌 윤태균의원(전국구)은 막판에 경고대상으로 들어갔다.
또 유진실업을 경영하는 이현수의원(전국구)도 졸지에 경고를 받았는데 이 의원측은 그동안 언론에도 이름이 잘 거명되지 않아 느긋하게 징계작업을 지켜 보았다는 것.
당은 이 의원의 경우 부인·자녀명의 부동산을 과다하게 가지고 있어 투기혐의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 의원측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윤 의원측은 『사기당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계파갈등 증폭
○…이같은 재산공개 뒤처리의 매끄럽지 못한 솜씨는 숨을 죽이고 있던 민정계의 불만을 터뜨리게 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15일 당무회의에서 곽정출의원과 이치호 당무위원(원외) 등 2명이 의원징계에 대한 당의 방침을 문제삼으면서 불만은 집단적 목소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곽 의원은 『돈이 많으면 다 죄인으로 몰리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 많은게 죄가 아닌게 이렇게 당해야 하느냐』고 지도부를 성토했다. 당무회의가 끝난뒤 대부분의 민정계가 『속시원히 할 말을 다했다』고 공감한 반면 민주계는 『어처구니없는 객기』로 평가절하하는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당내 분위기는 계파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쪽으로 돌고 있다. 일부 민정계 의원 사이에 『우리가 언제까지 죄인취급을 받아야 하느냐』 『여기가 공산주의 국가냐』는 등의 극언이 흘러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불만의 기류가 조직화하는 사태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다. 깃발을 들고 나올 민정계 중진급이 없는데다 민정계의 불만도 민주계와의 맞대결을 불사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들을 포용하지 않는데 대한 반발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민정계는 개혁자체가 아닌 재산공개 뒤처리의 「운영미숙」을 탓하고 있다.<이상언·오병상·이상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