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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아터진 JP­민주계 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민주 산악회 잡음”놓고 노골적 비판/김 대표/“대통령 의중 팔아 입지만회 전략”/민주계
민자당 김종필대표는 80년대 들어 좀체로 남에게 면박을 주지 않았다. 그는 헐뜯는 얘기를 하기 싫어한다. 간혹 불쾌감을 표시할 때도 직설적인 표현은 피한다.
그런 김 대표가 최근 당내 민주계의 이른바 「실세」들을 상대로 몇차례 싫은 소리를 내놓았다. 사석에서 한 말도 있고,고위당직자 모임을 거친 뒤 공식경로를 통해 발표하도록 한 발언도 있다. 산전수전을 겪은 김 대표이기에 어떤 형식이든 그가 입밖에 낸 말에는 무언가 곡절과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이 많다.
○…김 대표의 대민주계 발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다. 김 대통령의 의중을 읽은 「대리경고」라는 해석과 당내 계파갈등에 연원을 둔 「민주계 견제용」이라는 해석이다.
김 대표는 얼마전 한 사석에서 일부 민주계 중진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전·현직 사무총장인 최형우·황명수의원도 그 대상에 올랐다. 민주계 중진들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도가 세간의 추측과는 다르다는 말도 했다. 특히 최 전 총장의 처신에 대해서는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김 대표의 입에 올려진 이들이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황 총장은 김 대표의 비서실장인 김길홍의원을 불러 『그럴 수 있느냐』고 따졌다. 최 전 총장은 공식적으로는 논평을 하지않았다. 그는 지난 26일 부산에 내려가 지역구활동과 작고한 부친을 위해 절(범어사)에서 제를 올리는 일 등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 김 대표의 발언에 대해 물어도 「소이부답」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 전 총장의 측근들과 민주계 인사들의 불쾌감은 대단하다.
김 대표는 이어 몇몇 지구역에서 민주산악회 출신 인사들이 다음 선거를 노리고 활동중인데 대해 제동을 걸었다. 성남의 오세응의원이 중앙당까지 찾아와 『산악회 출신의 모인사 때문에 못살겠다』며 당차원의 조치를 요구한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었다.
지난 28일 김 대표 주재로 열린 당직자간담회 내용에 대해 김 대표의 입장을 대변해온 조용직 부대변인은 『최근 당조직에 혼선을 야기한 당사자들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고위층의 의사가 전달된 것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고위층」이 대통령이냐,김 대표냐 하는 의문에 대해 김 대표의 한 측근은 『대통령이라고 보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측근들은 『김 대표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당과 나라를 위한 차원에서 일부 인사들의 무분별한 행동에 경고겸 브레이크를 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의미는 간단하다. 『몇몇 민주계 중진이라는 사람들이 국정전반을 책임진 대통령 아닌 과거의 야당당수를 대하던 자세로 김 대통령을 모시면서 자기들끼리 갈등까지 빚고 있어 김 대통령은 이를 대단히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실명제다 무어다 해서 대통령은 불철주야 고심하며 일하는데 아직도 「닭장차 시절의 동지애」 운운하는 일부 인사들이 있어 김 대표가 대통령을 대신해 한마디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한 민주계의원은 『벌써 물러갔어야 할 김 대표가 자기 위상도 모르고 엉뚱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반발했다.
황명수 사무총장은 30일 민주산학회 문제와 관련,『산안회는 대선직후 이미 해체됐다. 하지만 몇몇이 모여 등산가는 것까지 어떻게 막나』며 오세응의원 등이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선당시 산악회를 이끌었던 최형우 전 총장의 한 측근은 『극소수 정치지망생들이 과거 산악회 당시의 인연을 끈삼아 개별행동을 하고 있는데 왜 최 전 총장이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하는가』고 노골적인 반감을 내비쳤다. 이들은 김 대표가 대통령의 의중을 내세워 민주계 견제 및 자신의 입지만회를 노리고 있다는 의구심에 가득차 있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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