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훑은 「카지노 조사」/이재훈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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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입금액 누락 3백98억원 등 적발금액 5백20억원,포탈세액 1백38억원,그리고 추징세액 4백59억원. 재산 해외도피는 없으며 다른 지분소유자도 밝혀지지 않았음. 비호세력은 또한 확인되지 않았음.』
국세청이 27일 발표한 서울 워커힐 카지노 등 3개 카지노업소에 대한 특별세무조사 결과다. 얼핏 보면 상당한 탈세를 잡았고 추징규모도 상당하다.
그러나 청와대가 「썩은 살을 도려내려는 대통령의 사정의지」를 강조하면서 전면조사를 선언했고,대다수 국민의 첨예한 관심을 끌었던 사안치고는 결과가 싱겁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좀더 자세히 따져보자.
국내 최대규모인 워커힐 카지노의 3년간 수입금액 누락은 2백48억원으로 발표됐다. 한해에 83억원이 채 안되는 금액이다. 이 업소의 지난해 신고매출액은 6백7억원이었으니 전체 매출의 12%를 빼먹은 셈이다.
일반 제조업체의 경우 과세노출률을 70% 수준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니 특별세무조사를 받고도 이만큼 밖에 안잡힌 워커힐 카지노는 현금수입 업종임에도 지극히 성실한(?) 납세자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놀라운 일은 이뿐 아니다. 이 업소의 지난해 환전차액은 1억3천9백만달러나 됐는데도 외화도피혐의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증자자금 원천을 추적한 결과 주주명부상 주주외에 실제 지분소유자는 없으며 전낙원씨 등 일부가 자신의 지분을 가족의 이름으로 위장분산한 사실밖에 없다고 밝혔다.
워커힐 카지노에 대한 조사를 진두지휘한 서울청 담당국장은 불과 며칠전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나 핵심인물이 잠적한데다 껍데기뿐인 가짜장부와 수많은 돈세탁용 계좌때문에 탈세포착에 애먹고 있어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바로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날 발표에서는 『이들 업소가 입금한 수표에 회사의 영문 이니셜을 표기해 자금추적이 쉬워 빨리 종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결론은 단순탈세범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포철에 대한 세무조사에서는 박태준 전 회장의 전재산 내용을 샅샅이 캐내는 집요함을 보인 국세청이 이처럼 서둘러 조사를 종결한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행여 카지노업소를 깊이 파면 배후가 드러나 파장이 커질테고,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세간의 소문과 연관이 있는건 아닐는지.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나선 세무조사가 결국 또다른 의문을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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