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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테이블서 능수능란하게 상대 휘어잡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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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04면

2000년 6월 ‘은둔과 신비의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 자리였다. 이후 그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등 외국 요인들과의 회담을 통해 베일을 하나씩 벗었다. 그는 다변으로 회담을 주도했고, 즉석에서 결정을 내리는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주제를 넘나들었다. 손님의 숙소를 찾아 회담을 하는 성의를 보였고 신비감을 부각하는 의전을 구사했다. 지난 7년간 ‘역사적’이란 수식어를 달고 김 위원장을 만난 국내외 요인들의 ‘김정일 평(評)’을 짚어봤다.

내가 본 김정일

김대중 전 대통령
(2000년 6월 13~15일 방북)

“지금까지 알려진 김 위원장에 대한 정보는 심하게 왜곡돼 있었다. 과거 정권은 그를 형편없는 사람, 능력 없는 사람 등으로 묘사했다. 여기서 얘기되듯 못난 사람이랄지,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이랄지,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차가운 심성의 이론가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적 능력을 갖추었으며 판단력이 예리했다. 감수성이 매우 강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행동은 대단히 유교적이어서 예의가 발라 나를 연장자로 배려해줬다. 내 다리가 불편하다고 내 숙소인 초대소에서 대화했다. 그의 말은 상당부분 일리가 있었다. 대화가 되는 사람이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북한 지도자 가운데 밖을 가장 잘 알고 가장 개혁을 하려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김 위원장은 머리가 아주 좋다. 이론적이기 보다는 즉흥적이다. 여하간 보통 사람은 아니다. 남의 얘기를 잘 이해하고 이치에 맞는 말은 즉석에서 수용할 줄 아는 결단성과 유연성을 갖고 있었다.”
(정상회담 후 언론과 국내 인사들에게)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2000년 10월 방북)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지적인 인물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라는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절망이나 걱정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에 넘치는 듯했다. 자신이 들은 아첨을 진정으로 믿고 있고 자신을 국가의 보호자이자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추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으며 미몽에 빠져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북한 경제의 계획을 얘기할 때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그는 회담에 대비한 준비를 아주 잘했다고 느꼈다. 그는 똑똑했다.”
(회고록 '마담 세크러테리'(The Mighty & The Almighty)와 언론 인터뷰)

콘스탄틴 폴리콥스키 전 러시아연방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리

(2001년 7~8월 김 위원장의 러시아 여행 동행)
“그는 많은 정보를 가진 지도자이며 유머 감각이 좋고, 강한 기운을 풍긴다. 러시아에 대해 얘기하다가 돌연 평양에서 열린 올브라이트 장관과의 회담을 회고했다. ‘내가 어떻게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 악마를 만나기로 결심했느냐고 물었지. 올브라이트는 처음부터 나를 마치 법정에서 신문하듯 했고, 나는 모든 질문에 답했는데, 그녀는 내가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이용해서 답하는지, 즉흥적으로 답하는지 유심히 살폈다. 내가 간단히 즉흥적으로 내 생각을 밝혔더니 내 성격을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또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권력뿐 아니라 정책도 이어받아야 하며 북한은 올브라이트 장관과 같은 수준의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3주간 여행에서 그는 대화를 주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80%만 이해했었다고도, 파리의 유명 카바레 리도의 무희 가운데 80%가 러시아 여성인데 제일 예쁘다고도 했다. ‘외교관은 검은 것도 희다고 하고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할 줄 아는데 나는 늘 직설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외교관으로서는 자격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한 번도 통일을 빨리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될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마약을 팔거나 사용하는 사람은 총살하라고 명령했다’면서 ‘만약 당신이 한국인 마약 중독자를 발견하면 그대로 쏴도 된다. 내가 권한을 주겠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저서 '오리엔탈 특급열차: 김정일과 함께 러시아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2002년 9월 17일 1차 방북)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난 김 위원장은 다나카 히토시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 등 평양 선언을 준비한 이들의 이름을 두 번이나 거명하며 거듭 칭찬했다. 한 일본 참석자는 ‘외교적 수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말이 빨라졌다.
그는 중국·러시아에도 비밀을 지켰다고 하면서, 준비해온 메모지를 흘끗 보고 말했다. 몸동작은 약간 굳어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납치문제를 먼저 꺼내며 ‘충격을 받았다. 강력하게 항의한다. 피해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사죄도, 인정도 하지 않은 채 불명확한 태도로 시간을 보냈다.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은 다나카 국장과 마철수 북한 외무성 아시아국장의 사전 실무회의를 총리가 있는 백화원 영빈관 본관에서 멀리 떨어진 별관에서 하도록 했다. 마 국장으로부터 ‘일본인 행방불명자는 현재 5명이 살아있고 8명이 숨졌다’는 충격적 통보를 받은 다나카는 ‘총리에게 분석할 시간을 주지 않고 회담장에 끌어내겠다는 계산이다.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회담이 끝날 무렵 고이즈미 총리가 생존자에 대한 면회, 납치에 대한 사죄, 사망한 사람들의 상세 정보 제공 등을 요구하자 김 위원장은 메모하며 듣고 있다가 ‘여기서 잠시 쉬지 않겠습니까’ 하고 회의를 중단했다.
오후 2시 재개된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납치문제를 먼저 풀어나갔다. ‘내부 진상을 조사해보니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 특수기관의 일부가 망동주의·영웅주의로 치우친 나머지 이런 일을 일으켰다. 내가 알게 된 뒤 책임자를 처벌했다. 솔직히 사과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김정일은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 신문 주필의 '정일 최후의 도박')

-이즈미 전 총리 2차 방북
(2004년 5월 22일)
“총리는 납치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상징인 푸른 리본 배지를 달고 회담에 임했다. 납치문제에 대해 양측은 노골적인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김정일은 ‘재미 없는 연극에서 손해 보는 역할을 계속하는 것은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1차 방북 시 고백·사죄로 해결을 시도한 납치문제가 꼬인 데 대한 항의)고 했다. 총리가 핵문제 해결을 강조하자 김 위원장은 ‘조선의 최종 목표는 비핵화다. 핵개발을 동결하면 검증이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총리가 ‘그 발언을 부시 대통령에게 전해도 괜찮은가’라고 묻자 ‘반드시 그래주길 바란다. 부시와 함께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고 춤추고 싶다. 여러분은 모두 반주를 잘해주기 바란다. 오케스트라는 여섯 명. 그러면 나와 부시의 이중창도 잘될 것이다’고 했다.”
('김정일 최후의 도박')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2005년 6·15 남북행사 때 방북)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6월 16일 저녁.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찬을 하던 중 임동옥 조평통 제1부위원장이 다가왔다. ‘축하합니다. 내일 오전 장군님 접견이 정해졌습니다.’ 접견시간도 조깅을 하다 통보받았다. 오전 11시. 장소는 대동강 초대소. 육중한 대문을 열어젖히자 20m 앞 홀 중앙에 김 위원장이 버티고 섰다. 기막힌 의전 연출이었다. 내가 한 발 내딛자 손을 내밀며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잘 오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다양한 현안을 때론 파격적으로 때론 신중하게, 입장을 솔직하게 밝혔다. 대단히 시원시원하고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200만㎾ 직접 송전’을 제안하자, ‘그 점은 검토해서 추후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선 대단히 신중했다. 그는 식량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부시 미 대통령이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부른 의미를 설명하며 ‘위원장도 각하란 표현을 쓰면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 각하라고 부를까(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으며). 내가 부시 대통령 각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근거가 없다. 푸틴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부시 대통령은 대화하기 좋은 사람이다. 좋은 남자다. 대화하면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 말한 것 아직 기억한다. 나는 클린턴 정부 때부터 미국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있다. 내 생각을 돌아가서 공개적으로 밝혀도 좋다.’
오찬장에서 김 위원장의 접대는 능수능란했다. 사진기자들이 다가오자 내게로 몸을 기울여 귀엣말을 하기도 했는데, 전혀 기억하지도 못할 단순한 인사말이었다. 기자들 앞에서 친분을 표현한 김 위원장의 배려로 생각됐다.”
(저서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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