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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현직교사와 해직교사 대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두명의 전·현직 여교사가 쓴 책이 교육계와 출판계에서 상당한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해직 국민학교 교사 노미화씨의 자전적 이야기『당신 참 재미있는 여자야』(보리간)와 양정자 교사(49·서울 성사중)가 묶어낸 시집『아이들의 풀잎노래』(창작과비평사 간).
노씨는 소녀시절에 꿈꿔온 대로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자 돈 봉투·체벌·편애를 모르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실감하는「울보선생님」으로서 참교육을 실천하려 애쓰다 교직생활 11년째 접어든 89년 전교조 가입을 이유로 남편과 함께 해직됐다. 현재 학교 밖에서 현직 교사들의 참교육 실전활동을 뒷바라지하는 중.
양 교사는 25년째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눈부시게 성장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모습을 따듯하게 그려냈다.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지 않고는 결코 토로할 수 없는 정서로 한심하면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교육문제들을 곰곰 되새겨 보게 한다.
남다른 열정으로 교육현장을 지켜온 두 사람이 만나 오늘의 교육현실과 장차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편집자주>
▲양=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서울시내에서도 비교적 경제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편인데도 학원과의 허용조치로 50%이상이 학원에 다니는 바람에 수업시간에 눈을 반짝이며 열중하는 학생이 드뭅니다. 학교 공부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고, 밤이면 학교숙제에다 학원숙제까지 해야하는 판이니 수업시간에라도 신물나는 공부에서 해방되고 싶겠지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일단 들은 내용이니까 긴장도 덜 하겠고요.
▲노=제가 해직되자마자 학원강사로 일해달라는 전화가 꼬리를 무는걸 보면 학원 과외가 얼마나 성행하는지 짐작할만 합니다. 학원에서 교과서 이외의 교재를 가르치려고 해도 학부모들이 교과서를 예습해 학교시험 성적을 올려달라고 한다지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지긋지긋해 하는지, 그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아랑곳없이 미리, 많이만 시키면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에 차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국민학교 때 벌써 부모들이 고맙지 않다고 해요.「시험 못 보면 막 야단치고 때려요」「노상 공부하라고 잔소리해서 지긋지긋해요」그런 식이에요.
▲양=그것은 학부모들의 일방적 잘못이라기보다 잘못된 입시제도, 그리고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비해 턱없이 형편없는 공 교육비 때문이지요. 최근 교육개발원이 발표한「교육여건국제비교」에서도 교사 1인당·학급당 학생수를 기준으로 볼 때 세계 1백68개국 중 우리는1백40위로 후진국 수준을 밑도는 사실이 드러났듯 우리 교육 여건은 상대적으로 점점 더나빠지는 셈입니다. 저는 비록 전교조 활동을 못했지만 그 교사들이 형편없는 교육현실을 바꿔보겠다고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는데 대해 무한히 감사하고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노=국민학교에 입학할 당시까지만 해도 그림 그리고 글쓰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이들이 차츰 솔직한 표현을 힘들어하며 그리고 쓰는 일을 무작정 싫어하는걸 보면 우리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게 아니라 짓밟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GNP의 5%를 교육예산에 투입하는 일마저 순조롭지 않은 추세가 계속되는 한 2000년대의 우리교육도 별반 기대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양=이제 우리 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성적만 올려보겠다고 기를 써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걸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자녀교육 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데 정부는 왜 이리도 교육투자에 인색하냐」고 주장하는 성숙한 교육운동에 힘을 모을 때 비로소 그 힘겨운 사교육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교육투자 효과도 극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교사와 학부모들이「현명한 교육소비자운동」에 함께 나서야할 것입니다.<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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