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는 공항시설 하향 평준화/엄주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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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목포공항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가 발생한 직후인 27일 민자당 국회의원 몇명이 현지에 내려갔다. 이들 현지파견 의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열린 28일 간담회에서는 오랜만에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사회간접자본 투자소홀을 한탄했고 투자의 당위성과 시급함에 입을 모았다.
그러나 기관은 뒤이어 열린 29일의 당정협의였다.
시설미비로 사고위험이 잠재해 있는 지방공항시설 확충 및 보수를 위해 내년도에 책정된 영종도 신국제공항건설 예산 4천억원의 일부를 전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항시설의 하향 평준화를 하겠다는 얘기다.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의 간접 원인을 사회간접자본 투자미흡에 있다고 진단하고서 그 처방을 다른 사회간접자본 투자재원의 전용에서 찾는다는 것은 논리상 모순일 뿐아니라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단견이 아닐수 없다.
한 국가의 공항시설과 처리능력은 그 국가의 국력과 부의 척도로 측정된다.
현재로서는 분홍빛 청사진에 지나지 않지만 영종도 신국제공항의 1단계 공사가 끝나면 연간 여객처리능력이 1억명으로 경쟁상대가 될 일본 간사이공항(건설중)의 연간 4천만명의 2.5배,홍콩 책랩콕 신공항의 연간 8천7백만명의 1.15배나 된다.
더구나 부대시설로 국제회의장 등 국제업무시설·물류단지·주거 및 상업단지·수출자유지역 등 조성계획은 직접경쟁 상대가 되는 일본에 위협을 주어 일본 언론의 단골 관심거리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한국정부가 1단계공사를 2년 미루겠다고 하자 이를 주요뉴스로 다루기도 했다.
한마디로 일본으로서는 엄두도 못낼 영종도 신국제공항의 복합화에 위기감을 절감하는 단적 예라고 할수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정부나 국회의원들은 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투자재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뛰는 사람 뒷다리 잡는」 케이스가 아닐수 없다.
구체적인 대책마련에 앞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의 공항시설은 따져보지도 않고 민항유치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고 그 결과를 자신의 능력이자 큰 업적으로 여기는 풍토를 겸허하게 반성하는데서부터 대책의 실마리를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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