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재산 조사설에 정·관가 뒤숭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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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직자 재산공개/뒤탈줄이기 묘수 고심/비대상자들도 “예금하기 싫다”/부양않는 직계 제외돼 은닉 악용 가능
재산을 공개할 공직자와 가족에 대한 금융재산 조사설이 보도되자 관가는 뒤숭숭하다. 재산공개 대상이 아닌 관리들 조차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개대상이 아닌 나도 예금하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등 예상외로 부작용이 많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총무처 관리들은 현 단계에서의 금융재산 조사지시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새 공직자윤리법은 심사를 위해 자료를 요구할 수 있게 돼 있어 언제 지시를 내릴지 모른다.
총무처로서는 전면 조사를 하자니 인력·시간이 모자라고,조사를 하지 않으면 법정신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같아 진퇴유곡이다.
윤리위원회가 법에 규정된대로 형식적 심사라도 하려면 최소한 기명계좌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다. 공개대상자의 가족까지 2만7천여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상호신용금고나 신용협동조합 등은 전산화돼 있지 않아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야 조사할 수 있다.
○총무처에서 부인
기명계좌에 넣어둔 돈을 허위신고하는 공직자는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돼 사실 기명계좌 조사는 별로 의미가 없다.
제대로 조사하려면 가명·차명계좌를 조사해야 하는데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금융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율곡사업 비리조사에서 경험했듯이 한사람의 가·차명계좌를 확인하는 데도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든다.
결국 신고의 성실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정도로 선별조사를 할 수 밖에 없으며 선별 방법으로 일정 금액이상의 사람만 조사하자는 의견,신문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사람만 조사하자는 의견 등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자진 신고한 금액을 기준으로 허위신고여부를 가리는 조사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금융기관은 손을 놓은 상태에서 신문이 먼저 허위여부를 터뜨리면 조사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당장 급한 것은 등록재산을 심사할 윤리위원회 구성 문제다. 9월11일까지 재산공개가 이루어지면 3개월간 등록내용을 심사하게 돼 있다. 그러자면 재산등록이 끝나기전에 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사법부나 입법부·헌법재판소·중앙선관위·정부 등 중앙기관과 지방자치단체(2백75개),시·도 교육청(15개)이 별도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게 돼 있어 무려 2백95개·1천6백15명에 이르는 윤리위원을 고르는 것이 큰 문제다.
각 윤리위원회의 위원 9명 가운데 5명은 외부에서 「법관·교육자 또는 덕망과 학식이 있는 자」를 위촉하도록 돼 있다. 이런 사람들은 우선 「원망만 듣게될 자리」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지방마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심사할만큼 스스로 재산문제에 자신이 있는 「청빈파」가 얼마나 있느냐도 문제다.
○보석확인 어려워
○…예금계좌 조사 보다 더욱 어려운 것은 양도성예금증서(CD)나 채권·고서화·보석 등이다. 수색영장을 들고 불시에 수색하지 않는 한 확인할 길이 없다.
또 직계 존비속은 부양하지 않는 경우에는 등록하지 않을 수 있게 돼 있어 합법적으로 재산 신고를 피할 방법이 보장돼 있다. 이것은 부동산뿐 아니라 예금도 마찬가지다. 굳이 재산공개를 의식해 가명계좌를 만들지 않고 그 부모·형제 계좌에 숨겨 놓으면 된다.
오는 26일 보궐선거가 공고되면 바로 시행될 공직 후보자의 재산등록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공직에 출마하면 후보등록과 함께 재산을 등록,공개해야 하고 선관위는 심사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 이번이야 숫자가 많지 않아 큰 문제가 없지만 지방의회 선거라도 실시되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도 없거니와 후보간에 음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윤리위원 인선에 진통을 겪고 있기는 국회도 마찬가지. 여야 총무단은 그동안 국회사무총장(이광로)을 국회에 배정된 4명의 위원에 포함시키느냐의 여부로 입씨름을 벌여왔을 뿐 5명의 외부인사 위촉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민자당은 국회의원외에 사무처 공무원들의 재산도 심사해야 하므로 사무총장을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민주당측이 사무총장을 포함시키면 야당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완강히 반대해 결국 사무총장은 배제될 전망.
윤리위원 인선과 관련,국회가 진짜 고민하는 것은 외부인사 위촉문제로 어느 누구도 위원직을 흔쾌히 수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이만섭 국회의장과 여야 총무단은 그동안 대법원측에 당연직인 법관 1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제대로 거명조차 하지 못했다.
○윤리위인선 난항
이와관련,민자당의 이성호 수석부총무는 『가만히 있으면 본전인데 어느 누가 원망 사는 일을 하겠느냐. 또 남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일에 끼면 윤리위원 그 자신의 도덕성도 심사받게 될터인데 찜찜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재산등록 마감일이 8월11일까지이므로 늦어도 8월5일께에는 위원들의 상견례를 겸한 위원회 첫 회의를 열어야 하는데 인선에 난항을 격고 있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김진국·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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