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표부의 「손님치르기」/배명복 제네바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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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레만호변에 위치한 제네바주재 북한대표부 건물은 공관이라기보다 큰 저택같은 느낌을 준다.
대표부 직원 설명에 따르면 10여년전 당시 꽤 잘사는 사람이 내놓은 개인저택을 구입했다고 한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3층 규모의 본관건물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지은지 얼마 안돼 보이는 현대식 단층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6일 미국과의 두번째 회담이 열린 것은 「문화오락장」이라는 바로 이 현대식 건뮬에서였다. 전통적인 유럽 스타일의 본관건물 왼편에는 어린이용 미끄럼틀과 그네가 설치돼 있다.
공관 안에는 어린이용 놀이시설이 있는 이유에 대해 제네바 시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원 자녀들이 명절같은 때 함께 모여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는게 북한대표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북한 재외공관의 경우 공관이 일부 직원들의 살림집을 겸하고 있다는 기자의 상식(?)을 간접적으로 부인한 셈이다.
그러나 회담이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면서 본관 건물 창문에 쳐진커튼 뒤로 반짝이는 몇몇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에서 기자는 상식이 확인되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평소 같으면 정원에서 뛰어 놀 아이들이 하루종일 집안에 갇혀 있게되자 답답함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커튼밖으로 살며시 눈을 내밀었으리라.
회담이 장기화되면서 살림집을 겸하고 있는 본관에서 회담장으로 쉴새없이 음료수와 간식이 들어갔고,이를 나르는 역할을 하는 것은 40∼50대로 보이는 여자들이었다. 아마 공관에 사는 일부 직원들 부인이었으리라.
저녁시간을 넘겨가며 회담이 계속되자 대표부직원 한명이 차를 몰고 나갔고 얼마후 그는 커다란 봉지를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미국대표단이 시장해하자 그들이 좋아하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시내에 나가 사온 것이다. 회담이 끝나기를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에게도 그들은 음료수를 내다주고,의자를 권하는 등 성의를 표했다.
첫날 회담이 열렸던 미국대표부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2중으로 굳게 쳐진 철문에 금속탐지기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미국대표부는 인간적인 냄새라고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삭막한 곳이었다. 미국대표단이나 취재진을 마치 손님으로 대하고 이들에게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성의를 다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듯한 북한대표부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사회에서 이제는 잊혀져가고 있는 우리민족 고유의 인정같은걸 느꼈다면 기자의 지나친 감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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