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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논쟁 재연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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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뉴스 분석 윤모씨 사건을 계기로 안락사와 존엄사 허용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일 전망이다. 이미 미국.대만을 포함한 선진국은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안락사는 물론 존엄사를 선택할 법적 장치가 없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라도 일단 병원에 입원하면 연명 치료를 멈출 수 없다. 의료진이나 가족이 연명 장치를 떼어내 환자가 사망하면 '살인죄'로 고발을 당할 수 있다. 1997년 보호자의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의료진에게 살인 방조죄를 적용한 '보라매병원 사건'이 대표적 예다.

국내 의학계에서는 10년 넘게 존엄사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회생 가능성과 연명 가능한 기간을 고려해 환자와 가족이 불필요하게 고통받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존엄사'란 말로 약물을 주입해 생명을 단축하는 '안락사'와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톨릭대 종양내과 홍영선 교수는 "환자가 '사전 유언장' 같은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를 통해 연명 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제도와 환자의 회생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천주교에서도 연명 치료 중단은 조건부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가톨릭대 생명윤리학과 구인회 교수는 "병원윤리위원회 같은 객관적 기구의 검증을 거칠 경우 환자나 가족이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는 것이 교계의 일반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불교계의 입장은 다르다.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지원스님은 "고의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모든 행위를 불교에서는 살생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은 96년부터 환자가 임종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등의 치료를 받을지 말지를 미리 정해 두면 의사가 그대로 진료한다. 환자가 숨져도 의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프랑스와 대만도 연명 치료를 중단할 권리를 인정했다. 정부도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다. 보건복지부 암관리팀 박경훈 사무관은 "연명 치료의 중단을 위한 절차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안명옥 의원이 이와 관련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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