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할 것이 별로 없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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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우리나라 학생들이 내로라하는 백화점에서 낙심천만에 빠진다.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의 상품이 그래도 열몇개쯤 진열대에 자리잡고 있겠지 하고 두리번거리다 발길을 거둔다. 그들이 발견한 국산은 기껏해야 한두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거의 고액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구석에서다. 한국 상품의 광고탑은 유럽 주요 도시의 번화가에 서 있으나 아직은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몇년후에는 우리나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게 될것이라고 정부가 자랑하는 것으로 보아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행세를 하는줄 알았다가 배반이라도 당한듯한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현장을 둘러보고서야 우리나라의 경제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겨우 평가하게된다. 우리들은 몇년만 참고 지내면 국민소득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데 도취되어 있었고,그리고 자만했다. 정치가 지나치게 바람을 넣었고,경제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안에서만 요란했다. 4년전 격심한 노사분규를 치를 때 우리는 자칫 남미꼴이 될 것이라고 자계했었다. 그런데 이미 우리의 산업경쟁력은 동남아의 말레이시아에 밀리고 칠레에도 앞자리를 내준 처지가 되었다.
미·일·유럽 등 3대 시장에서 한국제품의 수출가격 경쟁력은 중국에도 현저히 뒤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경쟁력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오늘의 문제를 풀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은 고급 외제품 쇼핑에 열을 올리기 보다 푸대접받는 국산의 현주소를 한번 눈여겨 보는 것만으로도 국정에 도움되는 견문을 익히게 될 것이다. 관리들은 외국제품이 경쟁력을 갖추게 된 행정적·제도적 지원의 이모저모를 귀담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의 대학생들이 밖에서 한국의 실상을 알고 재탄하는 것은 내일의 발전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일본의 엔화강세나 중국의 특수 등 외부적인 호제도 거의 소진될 위기에 와있다. 국내 물가는 오르고,제조업 투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 노사분규는 자동차 등 몇가지 제품의 수출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우리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경제마인드가 기업의 창의성을 살리는 쪽으로 더욱 접근해야 한다. 민간의 창의와 자율의 존중을 신경제의 기본으로 삼는다는 정부의 약속이 미덥지 못한 것은 뒷받침하는 제수단에 신용이 없기 때문이다. 규제완화 정책이 행정 일선에서 집행되기에는 시간이 걸리고,기술개발을 위한 투자에는 안전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아시아 15개국들이 정부규제를 풀고 인허가의 완화로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검토하는 마당에 정부가 할 일은 국제적 시각에서 산업구조의 고도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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