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결심」까지 가선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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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사분규가 계속될 때 「중대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언급은 여러모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가장 큰 의미는 무노동 부분임금과 해고근로자 복직문제 등으로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강한 분위기에서 대통령이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국가경제를 망치고 국민 이익에 배치되는 노사분규가 계속될 때 중대한 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언급은 노사 어느 한쪽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경제라는 거시적 목표를 위해 고통분담을 하자는 신한국 창조의 본래 의미를 재확인하는 발언이라고 본다.
중대결심의 그 다음 의미는 노사화합에 의한 새로운 노동분위기 창출이 어렵다면 이런 분위기를 깨뜨리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한 법적 제재를 하겠다는 의지표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대통령의 발언에 앞서 전노협 의장에게 사전영장이 떨어지고 현대계열사 노사분규의 배후세력에 대한 수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중대결심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느냐에 대해 큰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의 중대결심은 우선 노동쟁의상의 긴급조정권으로 볼 수도 있고,헌법 76조에 규정된 긴급재정·경제처분이나 명령까지 갈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처분 및 명령권은 내우·외환·천재·지변과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와 같은 긴급사태가 발생할 때에나 발동될 수 있는 권한이다. 현대 노사분규를 이러한 국가 중대 위기상황이라고 볼 수 있느냐에는 이론이 많을 것이다. 또 노동쟁의조정권이란 노동부장관이 취할 수 있는 긴급조정권이니 대통령의 중대결심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노사분규가 장기화될 때 대통령의 중대결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그러한 극약처방이 노사분규를 근원적으로 진정시키는 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노사문제는 당사자간의 협의와 합의만이 사태를 근원적으로 푸는 관건이다. 노사간의 협의와 화합의 정신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대통령의 긴급권이나 공권력의 무제한 발동으로 해결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중대결심이 어떤 형태로든 발동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사간의 문제를 풀어가는게 가장 좋다. 중대결심이나 공권력의 발동으로 노사문제를 「진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사간의 화합과 협의의 정신을 다시 발휘해 지난 4월1일의 노사합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노조쪽의 투쟁방향이 연대투쟁과 연대 파업이라는 파국적 방향으로 나가면 이에 대한 대응도 중대결심,긴급권 발동쪽으로 가게 된다. 현대그룹 회장과 노조위원장들간의 대화를 통해 현대분규를 푸는 전기를 꼭 마련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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