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개방화에 초점 평면 작업은 뒷걸음-이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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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낭만의 수상도시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는 지금 세계적인 미술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10월10일까지). 올해로 45회 째를 맞는 이 비엔날레는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와 더불어 지금까지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주요한 국제미술제로 자리잡아 왔다.
지난해의 카셀 도쿠멘타와 마찬가지로 평면작업의 퇴조를 보여주고 있는 이번 미술제는 현대미술에 있어 정해진 확고한 논리를 부정하고 여러 언어의 공존과 다양한 문화들 사이의 자유로운 상호 흡입을 인정하는 이른바 개방시대의 「문화적 유동주의」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색이다.
따라서 참가국들의 커미셔너에 의해 위촉된 작가들의 작품만이 발표되는 국가별 전시관 행사와 더불어 전문 큐레이터들에 의해 기획된 여러 특별 전 들은 각국간, 그리고 나아가 동·서양간의 문화적 상호 침투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 주제의 특별 기획전들 중에는 「동방으로의 통로」라는 주제의 기획전이 특히 눈길을 모았다.
이 전시는 「동·서양간 문화의 개방」이라는 행사 전체의 취지와 흐름을 함께 해 동양 출신 작가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일본·중국작가를 중심으로 이뤄진 전시였다.
그러나「동양 3국의 하나」라는 우리의 국가적 자부심은 이 전시장에서는 예외일 수밖에 없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모든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의 출품작은 우리측 커미셔너에 의해 선정된 하종현씨의 비구상 평면 회화작업이 이탈리아 전시관의 한 구석을 빌려 자리하고 있을 뿐 어떤 기획전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젊은 작가를 위한 특별 전인 「아페르토(개방이라는 뜻)93전」에는 정치적·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주로 담은 작품들이 발표됐는데 역시 평면작업에서 탈피, 오브제·비디오작업·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기획전에도 여러 명의 일본 및 중국출신 작가들이 포함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작가는 한 명도 선정돼 있지 않아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측 집행기구의 이번 행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때문이 아닌가싶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세계에 적극 내세우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기구의 정비가 매우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역성을 초월한 자유로운 정신의 교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비상한 감동과 다가올 미래를 풍미할만한 새로운 미술의 전조를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을 대하기는 어려웠다. 보편적 감동을 전달하는 새로운 미술언어의 부재는 우리 국내 미술인 들도 함께 극복해야할 당면 과제라고 느껴졌다. 【박경미<국제화랑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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