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박상우 진지한 실험의식 "번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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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젊은 세대들의 세계관, 고민스런 소설 쓰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설집 2권이 출간됐다. 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마디」로 등단한 구효서씨(36)는 소설집『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를, 88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박상우씨(35)는 장편『블랙리포트: 나는 인간의 빙하기로 간다』를 최근 세계사에서 동시에 출간했다.
이들 두 작가는 선배세대의 전쟁체험·농촌공동체체험과 같은 소설의 서사구조를 이룰 수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소재 및 주제영역을 찾아 괴롭게 소설 쓰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소위「신세대작가」의 대표주자다.
구효서씨의 두 번째 창작집인 『확성기…』는 새로운 소설을 찾아 몸부림치는 신세대의 실험의식이 돋보이는 단편 14편을 3부로 나눠 싣고 있다. 표 제작『확성기…』는 동료의 총에 맞아 죽은 한 사병의 군 생활을 동료들의 보고서 형식으로 옮긴 작품. 이밖에 젊은 회사사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밀히 감시, 보고한 정보기관의 컴퓨터파일을 옮겨 놓은「아이 엠 어 소피스트」, 문제학생에 대한 담임의 보고서「죽은 시인의 사회」등 1부의 작품들은 보고서형식, 기호학적 인칭, 파격적 구성 등 기존소설과는 전혀 다른 실험적 기법을 통해 개인주의적인 것 같지만 자아 자체는 없어져 버리고 대신 억압적 집단주의만이 춤추는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적 증후를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상우씨의 3번째 장편인『블랙리포트: 나는 인간의 빙하기로 간다』는 지금이 시대의 문명을 총체적으로 비판한 문자 그대로 「블랙리포트」다. 서기3030년 제7의 달 인류멸망조사국 팀이 사막유적에서 발굴한 1990년대의「문어 문」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원고지 10장 남짓으로 작품을 편편이 끊어 가면서 정치·폭력·범죄·섹스·마약·종교 등의 문명구조가 야기하는 다양한 광기의 표현을 통해 지금 이 시대가 세기말적 위기임을 드러낸다.
『논리를 압도하는 분열의 징후, 횡행하는 광기의 파편, 그리고 인생의 사막화현상-요컨대 지석이 세계가 드러내고 있는 생체리듬을 반영할 수 있는 소설형식을 개발해 보고 싶다』는 박씨의 말처럼 『블랙리포트…』에는 이 시대의 문명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기존 소설 형식을 깨뜨릴 수밖에 없는 신세대지성의 괴로운 몸부림이 짙게 배어 있다.
이들 두 작가의 글쓰기는 가벼운 감각으로만 문장을 두른다는 평을 받고 있는「신세대」와는 분명 다르다. 문명을 비판한다고 하면서도 그 저속한 문명에 함몰되는 글을 써 상품화시키는 요즘「신세대 작가」들과는 다른 삶의 진지성과 지성·형식의 실험의식을 이 두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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