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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교육혁명 중] 7. 결론은 인재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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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항공우주국(NASA) 소속 제트추진연구소(JPL). 요즘 전 세계의 이목이 모이는 곳이다. 지난 4일 화성에 발을 내디딘 탐사로봇 '스피릿'의 안부 때문이다.

지난 4일 화성 착륙 순간 이 연구소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이 가운데엔 우주과학자들과 기쁨을 같이 한 여고생이 눈에 띄었다. 어린 티를 채 벗지 못한 15세 코트니 드레싱. 미 동부 버지니아주 명문 공립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 10학년생이다. 우리로 치면 과학고 1학년생이다. 그는 '스피릿'의 착륙 순간을 "황홀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가 이런 역사적 현장에 있을 수 있었을까. 드레싱은 예비 우주 과학도가 NASA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의 덕을 봤다. 미 행성협회.NASA가 전 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한 '학생 우주 비행사'에 선발된 것이다. 우주 강국 미국이 미래 과학도를 발굴하려는 안목은 이처럼 고교생까지 뻗쳐 있다.

미국의 고교 역시 이런 인재들을 키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12월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 천문학 실험실. 드레싱이 수업을 듣는 곳이다. 학생들은 수만km 떨어진 서부 캘리포니아 마운트 윌슨(1천7백여m) 천문대에 설치된 24인치 망원경을 PC로 원격 조종하고 있었다.

나머지 11개의 실험실도 둘러봤다. '광학과 현대물리' '프로토 타이핑과 공학재료' '에너지 시스템' '극소전자공학'…. 도저히 고교 실험실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다. 실험실의 첨단장비는 AT&T.IBM.소니.버지니아전력 등 굴지의 기업들이 지원하고 있다.

학생들은 초일류 기업의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현장과 가깝고 현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따라가는 실용주의적 커리큘럼, 국가.연구소.학교가 연계해 우수 인재를 일찌감치 발굴해 키워주는 인재양성 시스템, 풍부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한 양질의 교육….

21세기 초강대국 미국의 힘의 원천으로 평가되는 교육 시스템이다. 이를 보고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든다. 지난 가을 세계 각국에서 60만명이 미국 대학교에 등록했다는 통계는 이래서 나온다.

동부 명문 프린스턴대. 시사주간지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의 대학평가에서 1위를 고수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이곳에서도 한국에서 온 우수 인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부생 한 명이 실험하는데도 학교 측이 핵자기공명장치 같은 값비싼 장비를 쓰게 해주더군요."(화학 전공 임지우)

"천체물리학의 경우 교수가 20명인데 학생은 3명에 불과합니다. 기부금도 미국 내 최고죠. 프린스턴에서 공부하는 데 학생의 경제력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철학 전공 추윤석)

이 대학의 기부금 규모는 83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한다.

뉴스위크는 지난해 9월 "세계 각국의 대학이 위기인데도 미국의 대학은 경쟁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며 "그 요체는 미국의 시장경제형 교육"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식 교육 모델의 핵심은 다양성과 경쟁이다. 이 모델의 위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평준화에 길들여진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5일 독일 집권여당인 사민당의 당정 회의.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엘리트 대학 10여개를 육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일의 '하버드' '옥스퍼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대학평준화를 이룬 독일에 논란의 불을 댕겼다.

아시아권에선 싱가포르가 인재 양성을 위해 국가적으로 나선 사례다.

지난 2일 싱가포르 국가영재학교(National Junior College:NJC). 중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친 1백29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이 학생들은 중학교 3, 4학년과 고등학교 1, 2학년 과정이 합쳐진 4년 과정을 배운다. 중학교 졸업시험(O Level)은 면제되고 고등학교 졸업시험(A Level)만 보면 된다. 올 들어 처음 시행된 싱가포르의 통합프로그램(Integrated Program:IP) 덕이다.

내년부터는 고교 졸업시험도 건너뛸 수 있다. 국립싱가포르대학(NSU)에 세워질 '국립싱가포르대학 수학.과학고등학교'가 그 징검다리다. 학생들은 싱가포르대에서 학위를 받고 국립싱가포르대 2~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다.

박정희 싱가포르 한국학교재단 이사는 "IP 과정과 수학.과학고는 국가자격시험인 중.고교 졸업시험 준비에 허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영재를 조기에 확보해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국가가 인재의 조기발굴과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 각국은 사람이 '경쟁력'이자 '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우리도 인재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라는 방법론을 두고 이런저런 명분에 묶여 있다. 갑갑한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그래서 인재 발굴에 인색하고, 인재가 커나갈 수 있는 통로를 터주지 못하고 있다.

◇특별취재팀=정책기획부 김남중.강홍준.이승녕.하현옥 기자, 오대영.김현기 도쿄특파원, 오병상 런던특파원, 이훈범 파리특파원

<사진 설명 전문>
프린스턴대와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고등교육연구소 소속의 입자물리학 전공 교수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미국 교육의 힘은 다양성과 경쟁, 기초를 중시하되 기업현장과 가까운 유연한 교육과정 등에서 나온다. [워싱턴 AP=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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