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재개발 위기 극복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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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10면

북촌 보존이 서울시 차원을 넘어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한옥 보존이 연속적인 동네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군데군데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서는 효과의 극대화가 어렵다. 전통적인 건축과 거리를 보존해 도시가 되살아난 사례는 유럽의 경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구도심 보존 통해 되살아난 프랑스 리옹

그 가운데 재개발로 인한 철거 위기에서 시민 문화운동을 통해 구(舊)도심 보존에 성공한 사례로는 프랑스 리옹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리옹 구도심은 199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리옹의 구도심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골목과 건물이 잘 보존돼 있다. 리옹은 2000년 전 시저가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총독 시절에 머물던 곳이다. 이후 프랑크 왕국의 역사와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가 이어져 있다. 따라서 리옹에는 로마 유적을 비롯해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등 여러 양식의 건축물이 뒤섞여 있다. 로마인들이 푸르비에 언덕에 지은 원형극장은 아직도 사용된다. 19세기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여전히 언덕과 평지를 오간다.

그러나 이처럼 잘 보존된 리옹의 구도심도 순탄하게 지금의 모습을 간직한 것은 아니다. 리옹은 견직공업과 의료·화학공업 등이 번성했으나 20세기 이들 산업이 기울자 도시 또한 침체했다. 주거지가 교외로 확대되는 바람에 구도심의 퇴락은 더 심했다. 1960년대에 전면 철거와 재개발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를 중심으로 리옹 구도심 보존운동이 벌어졌다. 건축가·미술가들은 철거 위기에 놓인 옛 건물을 사들여 직접 살기 시작했다. 이 추세가 30년 동안 지속돼 이제는 구도심 전체가 전통 도시의 모습을 지니게 됐다. 정부는 개·보수에 세제 혜택을 주고 비용 지원도 한다.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집에 사는 것은 아이들 교육에도 좋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에서 다섯 살, 세 살 난 두 아이를 키우는 외젠 피에르 부인의 말이다. 여덟 가구가 살도록 개조한 6층 집이다. 돌계단을 올라야 하고 창이 작아 빛이 덜 들지만, 부엌과 욕실을 개조해 큰 불편은 없다. 6m 너비 골목 건너편의 17세기 6층 건물은 아이들 학교다. 운동장은 옥상에 있다. 교외에 나가면 넓은 집에 살 수 있지만, 이런 집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리옹의 사례는 북촌도 문화운동을 통해 다세대가 들어선 자리에 다시 한옥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마을 전체가 다시 한옥 동네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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